연락할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에게 전화를 걸까 생각하다가 몇 사람의 이름에서 눈길이 멈춘다. 한 사람은 너무 바쁠 것 같고, 한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가족들에게 전화했다가는 괜한 걱정을 끼칠 것 같다. 결국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못한 채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카카오톡 단체방도 여러 개이고, 직장에는 늘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 교회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잊으면 편해질 줄 알았다

올여름 더위만큼이나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 「오디세이」에서 유난히 마음에 남은 장면이 있다. 놀란 감독이 원작과 다르게 그려낸 칼립소의 꽃잎 장면이다. 칼립소가 건넨 꽃잎을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희미해진다. 전쟁과 죽음,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오디세우스에게 그보다 달콤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픈 기억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 페넬로페도, 아들 텔레마코스도,…

상담노트(5) “하나님 앞에서도 애쓰는 사람들” 가들리 플레이가 들려준 안전하게 믿는다는 것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책임을 피하는 사람도 아니었던 그가 자주 했던 말은 “쉬어도 된다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불안해져요”였다. 직장에서도 인정받았고 교회에서도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왔다. 주변에서는 누구나 그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늘 긴장해 있었다. 잘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누군가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는지 조바심 내며 살폈다.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도 빠뜨린 것이…

칭찬을 받으면 왜 불편해질까

칭찬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능력이 필요하다. 뜻밖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칭찬을 하는 것보다 받는 일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누군가 “정말 잘하셨어요”라고 말하면 금세 손사래부터 친다. “아니에요. 제가 뭘요.” “운이 좋았어요.” “다른 분들이 다 해주셨죠.” 칭찬이 길어지면 화제를 돌리거나 농담으로 넘기기도 한다. 겉으로는 겸손해 보인다. 실제로 겸손해서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조금…

사과에는 여백이 필요하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미안해”라는 말을 마침내 들었다. 상대가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다. 이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때로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화가 치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대가 사과까지 했는데 왜 받아주지 못하는지, 이 정도면 그만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특히 신앙을…

상담노트 (4) “사랑하지 않는 청년들”

갈등을 겪던 부부의 상담 내용 중에는 둘째 아이를 낳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남편은 형제가 있는 편이 첫째에게도 좋고, 더 늦기 전에 둘째를 낳았으면 했다. 아내는 단호했다. “저는 다시는 못 해요.” 남편은 아내가 아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라며 답답해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내의 얼굴은 굳어졌다. 몇 차례 상담이 이어진…

눈물에도 시간이 있다

장례가 끝난 뒤였다. 조문객들이 돌아가고 빈소에 남은 물건들을 정리할 때까지 그는 거의 울지 않았다.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했고 장례 절차를 확인했으며 멀리서 온 친척들의 식사와 숙소까지 챙겼다. 주변에서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잘 버틴다고 여겼다. 장례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고인의 휴대전화를 충전기에서 빼는 순간 화면이 켜지며 익숙한 사진이 나타났다. 그 순간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상담노트 (3) “처단을 꿈꾸는 사회”

끝내 인정받지 못한 마음들   상담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한동안 바닥만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사람이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잠시 후 말을 고쳤다. “아니요…제가 당한 만큼 똑같이 겪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 오랫동안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억울함을 이야기했지만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냈고,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상담노트 (2) “말씀으로만 고쳐지면 안 될까요” 교회 밖에 없다고 말한 두 청년

20대 초반의 청년 두 명이 함께 상담실을 찾아왔다.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마약 끊고 싶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요.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말씀 들으면서요. 가끔 너무 안 돼서 무너지기도 하지만 살아보려고 하는데…이 친구는 아무것도 안 돼요.” 옆에 앉은 청년은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눈동자는 초점이 흐려져 있었고 질문을 이해하는 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