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아이러니

  세상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 열심히 준비한 일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옳다고 믿은 일이 도리어 외면받기도 한다. 애쓴 만큼의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 마음이 복잡해진다. 슬프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절망스럽지는 않고, 화가 나지만 또 한편으론 후련한 감정들이다. 슬픔과 분노, 허무와 안도가 서로 밀고 당기며 마음 안에서 자리 다툼을 벌이는 듯하다. 서로…

우리가 놓친 생명의 목소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백세희 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의 손에 들려 한국 사회의 감정 풍경을 바꾼 책이었다. 제목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 문장이었다. 삶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떡볶이 같은 작은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그 모순은 사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기분부전장애를 앓으며 자신의 정신과 치료 과정을 담담히…

낡은 의자와 동반의존

  어릴 적 집 한구석에는 오래된 의자가 하나 있었다. 앉을 때마다 한쪽이 삐걱거렸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 의자를 버리지 않았다. 불편했지만 없으면 허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그 의자가 오래된 인간관계와 닮아 있다고 느낀다. 이미 쓰임은 다했지만 버리자니 마음 한켠이 허전할 것 같은 그런 불편한 친밀감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기대며 산다.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이 말해 주는 것

  감리교회의 어른 한 분이 소천하셨다. “빈소를 차리지 말고 예배만 드려 달라”는 유언에 따라 섬기시던 교회에서 단 한 번의 환송예배만 드려졌다고 한다. 화려한 꽃도, 조의금도 없는 예배였지만 오히려 더 단정하고 품위가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담백한 그분의 선택이 그분의 삶을 가장 잘 말해 주는 듯했다. 함께한 이들은 “생전의 신념이 그대로 드러난 예배였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며칠 뒤, 코미디언계의…

허망함이 스며드는 날들

  언제나 그렇듯 뉴스를 켜면 한숨부터 나온다. 정치권은 대의를 말하면서도 결국 자기 편의 유불리만을 따지고, 교회의 지도자들조차 공동체보다 자신의 자리를 더 지키려 한다. 사랑했던 사람들조차도 어느 순간 자기 생존의 본능 앞에서 관계를 쉽게 내던진다. 살아보면 볼수록 삶은 참 야속하고 허망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물가가 내려간다 하지만 정작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무겁다. 마트에서 카드를 긁고 나오면 손에…

교회의 언어를 다시 생각하다

  아주 성실하게 신실한 마음으로 선교에 전력하는 선교사님이 계신다. 그분과 자주 전화로 얘기할 기회가 있는데, 선교사님은 항상 ‘할렐루야!’로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그 말이 싫은 것도 아니고 당연히 써야 하는 말임에도 귀의 어느 부분에서 무언가 덮이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대화의 반 이상이 ‘하나님의 뜻, 영광, 기도로, 영적 전쟁’과 같은 말들로 채워지는 분들도 계신다. 그 말들이…

당신의 마음에 잠수하라

    인류는 달에 사람을 보내고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를 망원경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국 NOAA(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의 해양학자 제임스 가드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달의 표면에 대해 해저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바다 중 80~95%는 아직 미탐사 상태다. 심해를 시각적으로 직접…

나는 끝내 사람이기를 원한다

  한 소년이 AI 챗봇과의 대화를 끝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가 기댔던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응답을 반복하는 인공지능이었다. “나는 너를 이해해”라는 말 이면에는 그 어떤 마음도 없었다. 그는 이해받지 못한 채, 끝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벨기에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어쩌면 우리 곁에서조차도 AI 챗봇과 대화하던 사람들이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정신적 균형을 잃어가며 극단적…

관계의 다이어트

  관계의 다이어트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끊어내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줄줄이 이어진 단톡방에서 탈퇴하고 연락처를 정리하고 모임 횟수를 줄이는 식이다. 하지만 관계를 다이어트 한다는 것은 몸무게를 줄이는 것처럼 숫자를 줄인다기보다는 혈액순환의 개념에 가깝다. 핵심은 흐름을 회복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자리를 바로잡는 차원이다. 몸은 살이 조금 쪄도 혈액이 잘 돌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혈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