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빌리는 힘
우리 상담센터의 작은 상담실 안에는 고통스러운 이야기, 화가 나는 이야기, 나락에 떨어진 이야기, 부끄러운 이야기, 갈등의 이야기가 수없이 문지방을 드나든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이지 않는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은 그 작은 공간을 깊은 한숨으로 채운다. 어쩔 수 없이 곤경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적어도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할 작은 기름병 하나라도 마련하여 건네야 하지 않을까.
엘리야의 뒤를 이어받은 엘리사는 선지자가 된 후, 물이 좋지 않아서 유산이 잦은 마을 샘터에 소금을 뿌려 정갈하게 만드는 기적을 보여준다. 나쁜 물을 좋게 만들어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물로 바꾼 기적은 엘리사가 어떠한 선지자가 되는지를 알려주는 사건이다. 혼탁하고 흐린 판단력과 어두운 면들이 나쁜 물을 상징한다면, 깨끗해진 물은 맑은 마음과 영, 명확함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엘리사의 기적 중, 과부의 기름병 기적은 우리가 절망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안내해 준다. 특별히 내담자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상담자들에게 분명한 이정표가 된다. 과부는 남편의 빚 때문에 두 아들조차 종으로 빼앗길 지경에 빠져 절망하며 엘리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남은 것은 기름 한 병밖에 없는 여인에게 엘리사는 집집마다 다니며 그릇을 빌려 오라고 명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그 기름을 모든 그릇에 차례대로 따르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그 기름은 아무리 따라도 없어지지 않고 마침내 모든 그릇을 다 채우고도 남는다. 빚더미에 올랐던 부인은 그 기름을 팔아 마침내 빚을 갚고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다. 한숨으로 가득 찬 상담실 공간에서 날마다 과부의 기름병 기적을 구한다. 아프고 힘든 이야기의 이면에는 경제적인 것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해외 파송 선교사님들이 겪는 어려움에는 생존과 결부된 비용의 어려움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선교지에서 질병이나 사고를 만나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뜻하지 않게 이별을 경험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져 우울과 공황장애를 겪기도 한다. 절망스럽고 앞이 캄캄하다는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엘리사처럼 나쁜 물을 좋게 만들고, 명확한 말 한마디로 치료의 길을 내고, 경제적인 문제도 척척 해결해 내는 능력을 베풀고 싶다. 그러나 엘리사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대할 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를 제시한다. 과부가 된 빚쟁이 여인에게 단순히 돈이나 물건을 주는 것은 동정에서 나오는 적선에 불과하다. 직접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게끔 빈 그릇을 빌려 오도록 하는 것은 남은 힘을 끌어 올리도록 격려하고 돕는 배려가 된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단지 동냥하듯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을 바탕으로 해서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과 관심을 잠시 빌려 왔다 돌려주는 것이다. 자신 안에 있는 열심과 성실, 인내와 용기의 자원으로 정당하게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일어서도록 배려한 엘리사의 태도는 귀한 가르침을 안겨준다. 빈 그릇을 모아 자기가 가진 기름 한 병이라는 보잘것없는 자원을 기반으로 내면의 힘을 기르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이가 진정한 상담자가 아니겠는가. 내면의 기름병이 마르지 않도록 보듬고 위로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위대한 기적인가. 하나의 아픔이 지나가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오고, 마음이 행복해지는가 싶으면 육체에 병이 생기고, 병이 낫는가 싶으면 사랑하는 이가 병에 걸려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이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풀어가야 할 인생의 숙제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돕는 이가 되고, 누군가는 도움을 받는 이가 되며, 도움을 받은 이는 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과 자원을 얻게 된다. 우리는 상처받은 영혼을 보듬는 일을 할 뿐, 근원적인 도움과 완전한 치료는 그분께 있다. 김화순∥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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