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이 다가오면 자연스레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교회에 모여 성탄 축하 발표회를 준비하던 기억들, 잘되지 않는 영어 발음으로 캐롤을 부르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던 얼굴들, 사회를 맡아 손에 땀을 쥐고도 태연한 척 애쓰던 순간, 집집마다 다니며 새벽송을 부르고 간식거리를 한 바구니씩 얻어 쌓아두고, 으레 꼬박 밤을 새우며 성탄의 새벽을 맞이하곤 했다. 그때의 성탄 행사는 지금보다 어설펐지만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남아 있다.
최근 TV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우들이 다시 모여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당시의 복장을 입고 맡았던 배역대로 충실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추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마음들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특별해서라기보다 기억을 소환해 내는 방식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억은 정신의 영역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한다. 그저 과거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경험을 선택적으로 부호화하고 저장하며 필요할 때마다 재구성되어 인출되는 능동적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때의 감정 상태, 관계 경험, 자기 이해와 맞물려 다시 편집된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기억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저장된 자료를 인출해 현재의 언어와 의미 체계로 다시 엮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과거의 복사본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과거를 재구성하는 결과물이다.
기억은 사건의 디테일보다 그 사건이 어떤 의미인가를 더 강하게 저장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도식과 틀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경험은 그 틀에 맞게 해석되며 기억으로 굳어진다. 같은 상황을 겪어도 누군가는 사랑받았다고 기억하고 누군가는 부담스러웠다고 기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탄 축하 발표회에서 느꼈던 긴장과 떨림은 장면과 감정이 함께 남아 있는 기억이다. 반면 성탄과 관련해 익숙하게 떠오르는 문장들과 표현들은 머릿속에 정리된 지식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삶을 실제로 움직이는 쪽은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정서가 묻어 있는 사건의 기억이라는 점이다. 감정이 실린 경험은 해마와 편도체가 맞물리며 또렷하게 각인되기도 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할 경우에는 조각난 채 남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건은 기억나지 않는데도 비슷한 상황만 오면 몸이 먼저 긴장하고 반응한다. 기억은 사라진 것 같아도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 있는 딸이 통화 중에 “그때 엄마가 그랬잖아요”라고 원망 섞인 말을 할 때가 있다. 내 기억과 딸의 기억이 어긋나는 순간이다. 딸이 하는 이야기 중에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도 있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억울하거나 당혹스럽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때의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바랬는지, 그때의 아이가 무엇을 필요로 했는지에 따라 동일한 사건은 서로 다른 형태로 부호화된다. 기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누군가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렇게 정당화된다.
문제는 기억이 현재를 지배할 때다. 어떤 사람은 좋은 기억을 반복 재생하며 삶을 지탱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상처의 기억을 매일 새롭게 현재화하면서 살아간다. 중요한 질문은 그 기억이 사실인가를 확인하기보다, 그 기억이 지금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이다. 나는 왜 특정 기억만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가, 그 기억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그 기억을 통해 나는 어떤 결론(나는 사랑받지 못했다, 나는 늘 실패한다, 세상은 위험하다)을 굳혀 왔는가이다. 기억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과거를 파헤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설계하는 작업이다.
성탄, 또다시 맞이하는 기억의 날이다. 추억의 향기에 아스라해지면서도 동시에 기억을 새롭게 해석할 기회의 때이다. 한 해의 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성탄다운 일은, 내가 붙든 기억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기억 위에 다른 의미를 덧붙이는 것이다. 상처가 곧바로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게 두지 않는 것이다. 매해 다시 오는 성탄은 우리에게 말한다. 기억이 과거의 감옥이 될 수도 있지만 은총을 배우는 소망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고.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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