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이 아닙니다
‘아무리 병원에 다녀도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몹시도 아프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몸의 통증을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심리치료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권유로 상담실을 찾아 온 내담자의 이야기다. 뚜렷한 진단 없이 몸이 아프면 당사자는 계속해서 건강에 대한 염려를 하게 되고 불안감이 높아져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도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고 신경성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라거나 스트레스니 마음에 안정을 찾으라는 식상한 대답을 들으면 증상이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몸도 아픈데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자주 반복되다 보면 가족이나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꾀병으로 여기거나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증상은 단순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증상을 호소하는 당사자는 고통을 실제적으로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까지도 경험한다. 그렇기에 가족들도 인내심을 가지고 이 상황을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하는 예민하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신체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는 정신사회적 스트레스가 다양한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말한다. 비교적 흔한 질환임에도 증상이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에 진단이 쉽지 않아 여러 병원을 돌며 고통을 겪게 된다. 기능성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긴장성 두통, 스테로이드 분비 증가, 신체감각에 대한 과민, 통증에 대한 역치가 낮아져서 작은 자극도 통증으로 인식, 각성과 주의집중력의 장애, 세로토닌의 변화 등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리역동이론에 따르면, 신체화가 유발되는 원인으로 억압된 적대감과 분노, 감정이나 고통스러운 사건을 부정하는 것, 감정표현의 어려움 등이라고 본다. 주로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이나 노인들에게서 유병률이 높게 나타나는데, 자신의 힘든 감정을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통을 신체증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체화는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로도 해석되는데, 무의식 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해 심리적 고통을 표현하고, 갈등을 풀어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본다. 행동사회학적 요인으로는, 부모의 양육, 어린 시절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의 병력, 환자 역할을 통한 어려움의 회피, 대인관계, 정서적 지지 등의 다양한 이차적 이득 및 학습 등이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체증상장애를 제대로 진단받고 치료를 받는 환자는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마도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 부족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정신과 진료로 인한 낙인이 두려워 기피하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여진다. 우선, 신체증상이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나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증상 또한 절대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 증상의 호소자는 치료나 상담의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를 가져야 하며 인지행동치료, 정신분석, 약물치료, 가족치료와 내과적 치료의 병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의사나 심리상담사, 가족들이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으로 일관된 경청과 공감이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한다. 반복되는 증상의 호소에 변함없이, 지치지 않고 주의 깊게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증상을 호소할 때마다 병원을 찾기보다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아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신체증상장애가 생겨난 잘못된 건강신념이나 건강행동, 불안, 가족관계 등을 관찰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충분히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자신의 증상에 대해 비난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 수치감이나 분노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체증상에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 요인을 파악하고 효과적인 대응방법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인내하고 능력을 강화해 준다면, 서서히 증상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화순∥중앙연회부설 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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