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길에서 폭행을 당해 쓰러졌다. 그곳을 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멈춰 서지 않았다. 10분 동안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옆을 지나갔고 그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노인은 홀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왜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도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방관자 효과에 대한 물음을 던져 준다.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많은 사람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개인이 책임감을 덜 느끼고 다른 누군가가 나서겠지라는 생각에 빠지는 심리적 현상이다. 누구나 도울 수 있는 상황에서 ‘나 아니어도 누군가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리에 도움의 손길은 펼쳐지지 않는다. 1964년 뉴욕에서 키티 제노비스가 목격자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살해당했던 사건 이후 심리학자들은 이 방관자 효과를 연구해왔다. 그리고 밝혀진 것은, 다수가 모인 상황일수록 책임감은 반비례하여 줄어든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점점 개인화되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지고 ‘다른 사람이 돕겠지’라는 생각으로 눈을 돌리기 쉬워졌다. 특히나 약자인 노인, 장애인 등이 폭력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방관이 더욱 빈번히 나타나며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약자에 대한 폭력조차도 쉽게 외면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과연 우리를 안전하게 품어줄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선한 사마리아 법’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선의로 행동한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법적 장치로, 응급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려는 행동을 장려하고 보호한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은 법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한의사 봉침 시술 사망 사건’에서의 가정의학과 의사와 같은 사례가 좋은 의도로 돕다가도 예상치 못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법이 존재하지만 그 실효성이 부족한 이유는 사람들이 여전히 법적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법적 보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더 근본적인 책임감의 회복이 필요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볼 때, 이웃의 고통에 스스로 반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저기 지나가는 빨간색 옷 입으신 분, 신고 좀 해주세요”라는 한 마디만으로도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책임을 분산시키지 않고 그 순간 우리 자신이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주체임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방관자 효과를 넘어서기 위한 첫걸음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응급 처치와 위기 대처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위급한 상황에서 더 자신감 있게 나설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교육은 사람들로 하여금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으로 돕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우리가 정말 살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바쁘게 돌아가는 길 위에서 잠깐 걸음을 멈춰 주위를 둘러보는 일,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사람다운 사회를 만들어 간다. 누군가의 고통에 반응하는 짧은 순간, 그 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공동체가 아닐까. 변화는 큰 운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멈춰선 그 순간,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작은 용기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고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씨앗이 된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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