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다하면 결국 통할 것이라고 믿었다. 상처받은 내담자가 변할 수 있도록, 마음 깊숙한 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한 회기 한 회기 최선을 다했다. 때로는 내담자의 분노와 방어를 감내하며 언젠가는 그 벽이 무너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 믿음이 반드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와의 관계를 신뢰했던 만큼 상처가 깊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내담자가 마지막 순간에 분노로 상담을 마무리한다면, 상담자는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 자문하게 된다. 내 진심은 의미가 있었던 걸까. 결국 이 관계도 무너진 것인가.
어떤 내담자는 타인의 행동을 왜곡해서 해석하고 상담 장면에서 급작스러운 분노를 표출한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갈등을 일으킨다. 상담자는 그런 내담자의 아픔을 이해하려 애쓴다. 수없이 공격을 받아도 결국 상담이 끝날 즈음에는 신뢰의 공간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상담의 종결이 다가오면,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당신도 결국 나를 떠나려는 거죠?’라는 듯한 감정 폭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상담자는 이해하면서도, 예견했음에도 한편으로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결국 나에게도 화를 내고야 마는구나. 그 순간 상담자는 혼란에 빠진다. 내담자와의 모든 시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문제는 내담자의 분노가 상담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그의 고질적인 패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상담자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늘 그래왔던 방식대로 마지막 순간에도 똑같이 반응했을 뿐이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강렬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며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버려짐을 두려워한다. 처음에는 이상화했던 상담자를, 마지막에는 자신을 배신할 사람으로 여기며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편집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쉽게 의심하고 악의적인 의도를 부여하며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경계를 유지한다. 그들에게 신뢰란 불가능한 감정이며 결국 배신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성격 구조를 가진 내담자는 상담 과정에서도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신뢰와 의심 사이에서 오가다가 끝내 관계를 끊어내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 관계는 실패한 것일까.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상담자는 더 잘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라는 죄책감에 빠질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담의 결과를 상담자의 책임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치유를 보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내담자가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 함께할 뿐이다. 상담자의 진심이 의미가 있었느냐는 즉각적인 변화로 판단할 수 없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상담자의 노력이 아무런 변화를 만들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자가 했던 말, 함께한 시간, 따뜻했던 순간들은 내담자의 내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씨를 뿌리는 사람과 물을 주는 사람은 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노력은 즉각적인 열매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심이 헛된 것은 아니다. 내담자에게 상처받은 상담자는 관계의 한계를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내담자의 분노는 내 것이 아니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보였던 감정은 나를 향한 개인적인 공격이 아니라 관계를 다루는 그의 방식일 뿐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상담자의 역할은 내담자의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변화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각적인 변화가 없다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담자의 말과 태도, 진심 어린 개입은 내담자의 내면 어딘가에 작은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상담자 역시 돌봄이 필요하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고 동료 상담자나 수퍼비전, 신앙적 성찰을 통해 상담자로서의 상처를 돌볼 필요가 있다. 진심이 늘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담자의 진심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내담자가 변화할 수 있도록 돕지만 변화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가 상담을 떠나더라도 역할이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 흔적이 그의 삶 속에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상담자는 다시, 새로운 내담자를 만나고 또다시 관계를 맺는다. 상처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믿고 걸어간다. 진심이 언제, 어떻게 닿을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진심을 계속해서 건네는 것이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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