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팔순을 훌쩍 넘으시면서 나에게 묘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에 거르지 않고 안부 전화라도 꼬박꼬박 드렸었는데, 어느 순간 어머니 전화번호를 누르려다 망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드라마에서 전화기를 손에 들고 무어라 끄적이다가 아니다 싶어 지워버리는 장면처럼, 툭 내려놓고 돌아서는 내 모습이 참으로 이상하였다.
부모는 자식한테 평생 죄인이라더니 나는 어머니를 늙지도 못하게 하는 불효자식이다. 흰머리가 반을 차지하는 이 나이에도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다. 늙지 마시라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달라고 말이다. 때로는 서운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이제는 넉넉하게 감싸주시지 못하는 게 서글프게 느껴진다. 변해버린 어머니의 모습이 슬픈 것일까,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픈 것일까. 평생 희생과 헌신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게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귀하고 존경스러운 삶이지만, 모든 면에서 약해지시고 흐린 판단력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속상한 감정을 대화 속으로 불쑥 끌어들이고는 그러한 마음새가 또 못마땅하였다. 평생 처음으로 아내 역할, 며느리 역할, 어머니 역할, 할머니 역할을 하면서 미흡한 부분도 많으셨겠다 싶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실수를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하고, 요구를 들어주시지 않았을 때의 원망스러운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모성은 인류가 공유하는 가장 근본적인 감정 중 하나이다. 이 감정은 자녀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보호 본능에서 비롯되며, 이는 분명히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모성애가 경계를 넘어서, 가족 관계에 있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결혼한 지 3년이 된 어느 부부는 시어머니 때문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시어머니가 집을 자주 방문했고 며느리의 생활 방식에 자잘한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남편은 어머니의 입장에 서서 아내에게 불만을 표시하였고 시어머니가 남편을 소유하려는 듯이 여겨져 아내는 소외감을 느끼는 한편 마음에 불만이 쌓여갔다.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위해 손주를 돌보고 있는 어느 친정어머니는 손주를 신세대 스타일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자율성을 존중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게 하려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반면, 딸은 엄격하고 분명한 양육기준을 정해 놓고 자녀를 키우고 싶어 했다. 이로 인해서 아이의 식습관, 학습 방법, 심지어 일상적인 활동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마찰이 발생했다. 가족의 관계에 있어 역할과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경계를 통해 각자가 서로의 공간과 역할을 존중하며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가족은 그 어느 조직보다도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에도 힘을 쏟아야 하는데 이는 서로의 기대, 우려, 그리고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도록 돕는 유용한 자원이 된다. 개방적인 감정의 소통은 오해를 줄이고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의 문을 열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 각자의 강점과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갈등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모성은 그 자체로 위대하지만, 모든 양육 방식이 모든 가정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각 가정의 독특한 상황과 필요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때로 세대 간의 이해와 조정을 필요로 한다. 양육은 여정이며, 이 여정에는 다양한 경로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 경로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사랑, 이해, 그리고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역할과 경계 내에서 이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성찰하므로 가족은 갈등을 넘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더욱 단단히 연결될 수 있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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