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모두에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감정의 골이 깊이 얽혀 있는 가족 관계는 명절처럼 모여야 하는 때에 더욱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추석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가족의 정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가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는 한없이 자비롭지만 딸에게는 가혹하기만 한 어머니와 함께해야 한다면, 더 아픈 시간으로 느껴질 수 있다.
정을 나누기 어려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현실에서 상처를 견디며 겨우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변화를 위한 중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모이는 이 순간은 과거의 상처를 다시 확인하는 아픈 시간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상처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변화의 시작점으로 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경계 설정이다. 어머니의 비판적인 말이나 행동이 반복될 때 그 감정적 공격을 무작정 받아들이지 말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관계를 단절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감정을 보호하고 더 이상 깊은 상처를 받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과정이다. 어머니의 말이 나를 비난하거나 헐뜯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 말들이 나의 자아를 해치지 않도록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상황에서 잠시 자리를 피하거나, 정중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통해 시작될 수 있다. 심리적 독립은 경제적 독립보다 먼저 시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 즉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뜻한다. 이 믿음은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가족 모임에서 자신의 의견을 한 번만이라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자신의 감정을 일기에 써보는 것, 또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보는 것 등이 될 수 있다. 작은 성취들이 쌓여가며 자기 효능감이 강화되고, 이런 작은 변화들은 심리적 독립의 첫걸음이 된다.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은 긍정적 자기 대화이다.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비판적인 말이 들려올 때 스스로에게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존중할 가치가 있어”라고 말하는 연습을 통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오랜 시간 가족 안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독립적인 삶을 이끌어 갈 수는 없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만의 관심 분야를 찾아 하나 하나 성취를 이루어 나가다 보면 자기 효능감을 키워갈 수 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적극 활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상황이라면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고, 지원 프로그램이나 창작 지원금을 활용하여 조금씩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준비가 이루어질 때 변화는 현실이 될 수 있다. 가족이라는 따뜻한 단어가 상처를 마주하게 하는 아픈 단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기회로 삼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어머니의 행동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나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계를 설정하고, 심리적 독립을 강화하며, 장기적인 독립 계획을 통해 자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상처를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받는 관계에서 벗어나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변화는 외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먼저 변할 때, 관계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추석엔, 스스로를 위해 한 걸음을 내디뎌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바로 독립과 변화를 향한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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