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실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날 했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회의가 끝나고 건넨 짧은 말 한마디, 가볍게 웃고 지나간 대화였다. 그러나 밤이 되자 그 장면에 붙잡혀버린다. 집에 돌아와 누운 뒤부터 그 한 문장이 반복된다. “내가 너무 가볍게 보였을까”, “불편했나” 같은 생각이 이어지면서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한다.
대화 중 스쳐 지나간 상대의 표정 하나가 남는다. 그때는 아무 의미 없이 넘어갔지만 집에 돌아온 뒤부터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확인할 수 없는 생각을 붙잡고 있다가 결국 다음 만남을 미루게 된다.
이런 일은 낯설지 않다.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이 없어도 마음은 그 장면에 머문다. 낮에는 그냥 흘러가던 일이 밤이 되면 멈춰 선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반복될수록 다른 의미가 덧입혀진다. 처음보다 또렷해지고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이 상태를 흔히 예민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현재로 끌어와 붙잡고 있는 방식이다. 이를 반추라고 한다. 반추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장면과 감정을 반복해서 활성화시키는 과정이다.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마음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반추는 시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는다. 지나간 일을 계속 현재로 불러온다. 이미 끝난 일도 끝나지 않은 일처럼 느끼게 한다. 이 반복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고, 우울감은 깊어진다.
밤이 더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부의 자극이 줄어들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향하게 된다. 그때 반추는 더 선명해지고 생각은 더 집요해진다. 몸은 쉬어야 하는데 마음은 계속 붙잡혀 있다. 그래서 잠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종종 생각이 많아서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놓지 못해서 힘든 경우가 많다. 문제는 생각의 양이 아니라, 한가지 생각을 반복해서 붙잡는 것이다. 같은 장면을 되짚는 동안 마음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 우리는 생각을 놓지 못할까. 그 안에는 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 순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고, 관계를 잘못 만들었다는 느낌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계속 돌아보게 된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무언가 달라질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미 지나간 일은 생각으로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생각이 현재의 마음을 더 묶어둘 뿐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깊이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라 멈출 수 있는 지점을 아는 일이다. 모든 장면을 끝까지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남겨두어도 괜찮다.
밤은 생각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생각이 사실은 아니다. 지쳐 있는 마음이 만들어낸 해석이 더 크게 느껴질 뿐이다.
생각을 쥐고 있던 손을 조금만 풀어도 마음은 생각보다 빨리 제자리를 찾는다. 놓는다는 것은 잊는 일이 아니라 그 장면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김화순 소장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심리상담센터 엔,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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