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중증외상 전문의 부족이라는 현실적이고 심각한 의료 위기 앞에 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가 예산 부족으로 운영 중단 위기에 처했다가 서울시의 긴급 지원으로 간신히 위기를 면한 사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증외상 전문의는 대형 사고나 재난에서 위급한 환자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필수적 의료인력이지만 열악한 근무환경과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인해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다. 작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중증외상 전문의 수요 대비 공급 비율은 60%에도 미치지 못하며, 특히 지방의 경우 한 명의 전문의가 24시간 동안 병원을 지키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이는 곧 환자 생존율 저하로 직결되는 치명적인 문제다.
이러한 현실은 의료계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다 공감하듯이 교회 현장에서도 목회자 양성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 신학교 지원율은 현저히 감소했고 졸업 이후 목회 현장을 떠나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명감과 헌신으로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던 이들이 많았지만, 현재는 목회자의 자질 문제와 탈진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중증외상 전문의 부족과 목회자 지원의 감소라는 두 현상은, 얼핏 보면 서로 별개의 문제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동일한 원인이 자리 잡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헌신과 사명감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중증외상 전문의와 목회자 모두 고도의 전문성과 헌신을 요구하는 직업이지만 과도한 업무 강도와 낮은 처우, 그리고 사회적 인정의 부족으로 인해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다.
과거 사회는 의사와 목회자 모두에게 헌신과 희생을 미덕으로 여겼고 그 가치는 보상의 부족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는 무조건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사회적 구조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의 질을 중시하며 그러한 가치에 따라 진로를 결정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더 나은 교회를 위한 대안적 방향성을 가지고 목회자 양성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신학적 지식 전달과 졸업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목회 현장에서의 경험과 영성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정신적 건강을 위한 체계적이고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교회는, 헌신과 돌봄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헌신은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구조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목회자들이 정기적으로 심리상담과 자기 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제도화하고 경제적 지원과 안식년 제도를 보다 현실성 있게 시행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멘토링과 동반자 시스템을 통해 경험 있는 목회자가 후배들을 실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좋은 목회자는 이론 교육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험과 현실적 고민, 그리고 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적 환경이 필요하다. 의료 현장에서 전문의가 전공의를 지도하는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교회 또한 경험 많은 이들이 또 선배들이 후배 목회자를 실제적으로 양육하고 지원하는 구조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의료 현장과 같은 사회적 영역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중증외상 전문의 처우 개선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교회가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는 것은 교회의 사회적 신뢰와 건강한 미래를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 됨을 잊어서는 안된다.
목회자와 중증외상 전문의는 모두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귀하고도 소중한 존재다. 생명을 살리는 손과 영혼을 일으키는 마음이 지치지 않고 지속되게 하는 일은, 사회와 교회 공동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며 과제다. 이제 교회가 먼저 변화의 물꼬를 트고 돌봄과 책임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생명과 회복의 토양 위에 다시 건강하게 경작될 수 있을 것이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