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장감, 요즘 세계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감정이다. 전쟁은 멀리서 벌어지고 있지만 불안은 일상 가까이까지 들어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전쟁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 전쟁이 마치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진다. 공기 자체가 달라진 듯하다.
이런 긴장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편을 찾는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는 등을 돌린다. 정치와 사회는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도 편 가르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불안이 커질수록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강하게 매달린다. 집단 소속감은 정체성과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집단은 옳고 다른 집단은 틀렸다고 믿는 순간 잠시나마 편안해진다.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단순하게 구분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전쟁과 경제 불안이 이어지고 있고 여기에 급격한 기술 변화와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까지 겹쳐 있다. 우리는 보통 미래를 가늠하기 어려울 때 가장 큰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단순한 설명을 원한다. 그리고 분명한 구분을 찾는다.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아닌지부터 확인하려 한다.
두려움은 시야도 좁힌다. 불안이 깊어질수록 타인의 행동은 위협으로 해석되기 쉽다. 같은 말도 공격처럼 들리고, 다른 의견은 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때부터 세상은 더 위험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넓은 세계를 바라보기보다 작은 울타리 안으로 물러난다. 그 울타리는 곧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그리고 그 경계는 예상보다 빠르게 혐오와 적대의 언어로 굳어진다.
극단적 정치와 배타적 민족주의, 강한 지도자를 향한 열망도 이런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복잡한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는 대신 분명한 구분을 제시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누가 우리의 편인지, 이익인지 아닌지를 단호하게 말해주는 지도자가 지지를 얻는 이유다.
이렇게 부족처럼 모여 살기 시작하면 그 사회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줄어들고 다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때 공동체의 기반도 조금씩 흔들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정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불안할수록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만 어울리려 한다. 낯설거나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은 불편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은 대부분 낯선 세계와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새로운 질문을 떠올린다. 그 질문을 통해 생각은 넓어지고 마음의 크기도 확장된다.
두려움은 우리를 부족사회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두려움을 견디는 용기는 인간을 다시 인간다운 세계로 돌아가게 한다. 두려움이 만든 경계를 넘어서는 힘, 낯선 타자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용기, 어쩌면 그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어야 할 또 다른 얼굴일지 모른다.
국경과 이념, 마음의 울타리까지,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울타리가 아니다. 두려움을 견디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있을 때 다시 타자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 결국 인간이 두려움 속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울타리가 아니라 방향이다.
김화순 소장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심리상담센터 엔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