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하루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때로는 마음속 깊은 감정을 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정말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가?’일 것이다. 단순히 공기의 진동에 의한 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담긴 진심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듣기에 익숙한 나조차도 때때로 이 질문 앞에서 혼란을 느낀다. 내담자의 이야기가 지루하게 반복되거나 불편하게 다가올 때는 마음의 중심을 잡기가 어렵기도 하다.
진정한 경청이란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며 듣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느끼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 고민과 기대를 함께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을 말한다. 한 사람의 목소리에는 그들의 삶의 경험과 생각이 스며들어 있으며 이를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 요즘처럼 소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단순히 듣는 사람보다도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듣기는 속히 하라”(약 1:19)는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소통이 귀 기울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듣고 난 후에는 그 이야기를 중립적으로,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만 그 시선이 때로는 편향될 수 있다. 중립적으로 본다는 것은 편견을 내려놓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중립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상대방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하셨을 때, 사람들은 그 순간 자신의 판단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우리도 잠시 자신의 감정과 편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공의와 사랑이 담긴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야말로 우리를 한층 성숙하게 만든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려는 노력은 신뢰를 쌓아가는 밑거름이 된다. 경청은 상대의 목소리 속에 담긴 감정과 진심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익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회적 문제나 갈등 속에서 사람들은 불이익이나 보복을 걱정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익명 보장은 그들이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요한 방패가 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익명 보장이 그들의 목소리를 지치지 않고 더 강하게 만드는 수단이 된다. 사랑과 배려는 이웃의 목소리를 지키는 데서도 실천될 수 있다. 익명성이 보장된 환경에서는 그동안 감추어졌던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유는 반드시 책임감과 함께해야 한다. 익명이 주는 자유는 그 힘이 막강하지만 그만큼 그 목소리는 진실되고 사랑으로 채워져야 한다. 우리가 책임감 있게 말할 때 그 목소리는 비로소 힘을 얻는다. 진실은 언제나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너무 낭만적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서로를 존중하고 귀 기울이며 중립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이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익명성을 존중하고 책임감 있게 소통하는 관계 속에서 신뢰는 깊어진다. 이러한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편견 없이 바라보며, 서로의 목소리와 삶을 보호해 줄 수 있다.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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