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늘은 어디에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군집이 있다. 더 이상 학교에도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접촉을 거의 끊은 채 방 안에서만 지낸다. 청년뿐 아니라 점점 늘어나는 장년까지 흔히 ‘쉬었음’으로 표시되는 이들은 은둔형 생활을 하며 경제활동을 중단하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이들이 보여주는 현상은 게으름이나 일시적 휴식의 문제가 아니다. 좌절과 상처, 사회적 실패의 부담을 안고 멈춰 선 사람들이다. 공식 통계로는 잘 잡히지 않지만 이제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직면할 때가 되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연구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또 다른 결을 가진다. 일본은 고도 경제성장 이후의 과잉 경쟁, 가족 내 실패 수용의 부재, 학교 및 직장 내 따돌림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청년실업, 과도한 학업 및 취업 스트레스, 공정성에 대한 불신, 비교 문화와 성취 강박, 그리고 점점 좁아지는 중년의 이직과 재취업 시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유교 문화의 체면과 성공 중심주의로 인해 낙인을 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 좌절이 공동체의 실패로 간주되고, 가족마저도 망신이라 여기며 은밀히 숨기려 하거나 몰래 내몰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외부 지원 체계와 단절이 되고 자신의 의지나 신앙만으로 벗어나기에는 벅찬 심리적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현상은 학습된 무기력, 자아효능감 상실, 사회적 회피의 복합적 결과로 볼 수 있다. 우울, 불안, 사회 공포, 완벽주의적 성향, 자기 비난 등이 공존하며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 내 긴장과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족들은 그들을 돌보는 데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처음에는 격려도 했다가 압박도 했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하거나 반대로 과잉보호와 동조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는 가족 위기의 신호이며 당사자만이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상호작용 패턴을 점검하고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중대한 신호라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실패자로 보이는 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집 밖으로 나갔다가 허망하게 돌아오는 탕자를 지극정성으로 맞이하는 한편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에서도 문제를 숨기거나 방치하지 말고 찾아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비판과 훈계보다는 경청과 이해, 일상의 작은 변화부터 함께 시도하는 지속적 동행자가 되어야 할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에 여러 번 실패하고 부모의 실망과 친구들의 성공 소식을 견디지 못해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청년을 생각해 보자. 가족들은 보통 “마음을 고쳐먹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와 같은 말들로 압박을 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을 열고 나가라’는 말 대신 ‘그 방 안에서부터 함께 하라’는 접근을 제시한다. 문 앞에 따뜻한 음식을 두고, 하루에 한 번은 작은 메모로 안부를 전하고, 재촉 대신 “얼마나 힘든지 이해해 볼게”라고 말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40대 후반의 남성이 직장 해고 후 자신감을 잃고 2년 넘게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를 자꾸 예배의 자리로 초대하기 전에 작은 부탁을 건네볼 수 있다. 교회 화단에 꽃을 심는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묻는다거나 부러진 책상 다리를 고쳐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요청하는 것이다. 작고 구체적이며 당장의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일로 다시 사회에 발을 디딜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조기 발견과 개입은 최선의 예방이며 해결책이다. 고립 징후를 민감하게 포착해야 한다. 상담과 심리사회적 개입 또한 필요하다. 단순히 직장을 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효능감을 회복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쌓게 하고, 가족 상담을 통한 역할 재조정이 필요하다. 취업 시장의 유연성, 실패를 재도전의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쉬었음’은 이력서상의 공백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과 삶이 숨을 고르는 시간일 수 있다. 하나님은 그 시간조차도 버리지 않으신다. 욥의 고난, 다윗의 동굴 생활, 엘리야의 로뎀나무 아래 좌절은 하나님 앞에서의 멈춤과 회복의 이야기다. 문제 해결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기다려주고 회복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방향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당신은 아직 끝난 사람이 아니라고 온몸과 마음으로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함께 일어설 수 있는 길은 바로 그 이해와 기다림에서 출발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비추는 사회적 거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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