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공감하는 사람들
배움의 자리에서 동고동락했던 친구가 아프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 작별의 인사를 나누지 못했기에 실감도 나지 않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과 모여 그 친구를 생각하며 오랜 시간 애도했다. 너무나 황망한 소식에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슬픔에 빠져있는 동안 나의 슬퍼하는 얼굴에 관심을 보여주고,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며 ‘힘들겠다, 너무 슬프겠다’고 이야기해주는 이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위로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위로와 공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까지 너무나 아팠을 것이다. 깊어지는 가을만큼이나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허무함을 넘어 초연해지기까지 하는 슬픔이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줄지 궁금하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 어느덧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지내던 내 자신을 발견하며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한탄한다. 친구를 잃은 슬픔도 이리 큰데 금쪽같은 자식과 사랑하는 가족, 헤어지면 못 살 것 같은 친구를 잃은 슬픔의 깊이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분들의 슬픔의 크기는 얼마나 작아졌을까. 우리가, 우리 사회가 그들을 더 슬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고개를 숙이게 된다. 슬픔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강하게 닥치게 되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슬픔이 스며들고, 사람들과 만나 슬픔을 나누는 일조차 버겁게 느끼게 된다. 뜻하지 않게 불쑥 찾아온 슬픔으로 인한 충격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마음과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위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기에 함께 하며 같은 마음으로 슬픔을 공유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공감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함께해주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적어도 슬픔의 이유와 슬퍼할 시간을 제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슬픔의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서기 위해서는 슬픔이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감정적 공간을 두는 일이 필요하다. 무조건 생각을 털어내려 한다거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슬퍼할 만큼 슬퍼하고 아파할 만큼 아파해야 감정의 무게가 덜어지게 되는 원리와 같다. 신비로운 것은 슬픔은 위로를 만나면 다른 감정으로 전환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슬픈 일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벼워지는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슬픔을 보듬어 주어야 한다. 보듬어 주고 난 이후에야 우리가 처한 상황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슬픔을 함께 나누고 이해하며 함께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고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이 그립다. 우리는 모두 아픔을 통해 성장한다. 슬픔과 아픔이 없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겠냐만은 결코 그럴 수 없을뿐더러,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당당하게 맞서는 삶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당한 슬픔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우리 삶에 있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당한 이들과 함께 슬퍼함으로 그 슬픔을 엷게 하고, 외면하지 않고 눈감지 않으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