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힘들었어요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교외 체험학습을 신청했던 11살 어린이와 그 부모의 주검이 바다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은 부모가 투자 실패와 정신적인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어린 생명이 죽음의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고물가, 고금리의 경제난에 또 얼마나 많은 가족이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될지, 어린 자녀들이 부모에 의해 얼마나 슬픈 일을 겪게 될지 섬뜩한 염려가 밀려온다.
우리는 ‘가족동반자살’이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하지만 사실, 동반자살이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자녀살해 후 부모자살’이라는 용어가 보다 객관적인 명칭이다. 서양에서는 부모의 자살에 자식이 함께 사망하는 경우를 아동살해 혹은 자녀살해로 구분해 왔다. 1990년대 이후 ‘가족동반자살’이라고 보도되는 사건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성년 자녀들이 자발적인 죽음을 선택한다기보다는 부모의 행위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현상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배우자와 자녀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여기는 유교적 관념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녀를 소유로 생각하는 관념의 변화와 더불어 부모가 떠난 후 남겨지는 자녀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돌봄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프로이트는 외부 대상으로 향했던 사랑이 공격성으로 변해 자신을 향해 일어나는 것이 자살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환상이 기인하고 있는데, 흔히 자신이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미안해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자존심에 입은 상처를 파괴적인 복수로 보상받으려는 복수 환상과,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이 너무나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자책한 나머지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징벌 환상이 있다. 리셋 환상이라는 것도 있는데, 컴퓨터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리셋 버튼을 눌러 새로 시작하면 되듯이, 인생이 너무 꼬였다고 여기면 자살을 일종의 리셋(Reset) 버튼으로 여기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현실도 게임에서처럼 리셋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사회적 현상을 리셋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게임, 통신, 음란물 등을 포함한 인터넷 중독의 한 유형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과 유사하다. 리셋 해버리면 그만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현실에서 조금의 어려움만 있어도 그것을 회피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마음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실패 후에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내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리셋 버튼이 없다. 이 점을 명심하고 항상 신중하고 주어진 일에, 주어진 생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극도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 역시 불안의 위기에 놓여 있다. 코로나 이후 회복의 탄력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확장되면서 개인의 삶과 가정의 안정을 위협하고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가십거리와 되지도 않는 이슈에 귀를 여는 일을 멈추고, 캄캄한 터널 한가운데서 길을 찾고 있는 이들은 없는지 두 눈을 크게 밝힐 일이다. 생명이 쉽게 포기되지 않도록,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을 맞는 어린 생명이 없도록, 사랑의 행위에 더욱 힘쓰라는 말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가수 김창완의 ‘먼 길’이라는 곡이 애잔히 들려 온다. 얼마나 힘들었어요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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