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씨가 자꾸 무언가를 잊기 시작한 건 몇 달 전이었다. 처음엔 그저 나이 때문이라며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어느 날은 집 앞 마트에서 길을 잃었고 일상적인 일조차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결국 병원에서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남편과 자녀들은 충격에 빠졌다. 가족들의 머릿속엔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수연씨에게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스스로 무언가를 하라고 재촉했다. 정작 돌봄에 나서는 이는 없었고 병원에 가는 일조차 수연씨 혼자 감당해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연씨의 상태는 더 악화되었고 실수가 잦아지자 가족들은 어느새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기보다는 불편해했다. 자꾸만 반복되는 실수에 지쳐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수연씨는 자신이 짐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점점 더 고립감을 느꼈다. 에밀 뒤르켐이 말한 사회적 관계와 연대의 중요성은 이 상황에 그대로 적용된다. 가족 내에서의 연대가 약해지면 그 틈새에서 고립감과 불안감이 자라난다. 수연씨는 가족의 지지 없이 홀로 그 불안한 틈새에서 버티고 있었다. 가족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돌봄을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치매라는 상황은 결코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족들의 따뜻한 손길이 절실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책임 분담을 넘어서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치매를 겪고 있는 가족에게는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하다. 단순히 의무로 느껴지는 돌봄이 아닌 서로가 마음으로 함께하는 돌봄이어야 한다. 수연씨가 지금 느끼고 있는 외로움과 무력감은 가족이 그녀에게 보내는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중 가장 가까운 이웃은 바로 가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역할을 나누어 돌봄을 분담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누군가는 병원 방문을 담당하고 또 누군가는 일상적인 돌봄을 맡으며 각자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저 책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마음이다. 돌봄은 일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사랑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수연씨는 매일매일 따뜻한 말 한마디, 손을 잡아주는 작은 제스처를 필요로 한다. 치매 환자에게는 정서적인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그녀가 가족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힘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전문적인 간병인이나 상담사들이 제공하는 조언을 통해 가족은 더 나은 방법으로 수연씨를 지원할 수 있다. 그 또한 사랑의 한 형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지지하는 지혜의 길이다. 그리고 가족만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교회의 기도 모임이나 봉사 활동을 통해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은 정서적·영적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신앙 공동체가 함께하는 연대 속에서 가족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얻게 된다. 그 과정은 힘겨울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결국,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단순히 책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랑의 과정이다. 그 안에서 가족들은 서로 더 깊은 연대를 느끼고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치매는 단지 의학적인 문제를 넘어 가족과 신앙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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