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고민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관한 것이다. 특히, 오랜 시간 학문을 연구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일해 온 사람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때, 그 자괴감은 더욱 깊어진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한국 사회에서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적인 정서 속에서는 ‘남에게 보여지는 것’과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인정에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유독 직책이나 직함, 소속이 주는 무게감이 크다. 오랜 시간 학문적 연구를 이어오며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학교나 연구소에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교수임용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고 연구소에서 중요한 프로젝트에 배정되지 않거나 논문을 발표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 자신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자괴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폄하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단순히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꽤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신의 성과와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엄격한 위계질서와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때로는 그 노력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이 박사(가명)는 국내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중요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기대하며 입사했다. 하지만 입사 후 그는 자신의 역할이 보조적인 것에 그치고 주요 연구나 발표 기회가 다른 선임 연구원들에게만 돌아가는 상황에 좌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의 의견이 중요한 회의에서 반영되지 않는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점점 자괴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박사는 자신이 이룬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연구소 내에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상담실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타인의 인정이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 가치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룬 성과를 되돌아보면서 쌓아온 전문성과 업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비록 지금 맡은 역할이 예상보다 작게 느껴질지라도 그 역할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또한, 주어진 일을 단순한 의무로 여기지 말고 성장과 발전을 위한 기회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때로는 중요한 프로젝트나 발표와 같은 눈에 보이는 역할보다 연구소 내에서의 일상적인 연구 과정에서 보여주는 세심한 연구와 기여가 더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주어진 책임을 통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삼고 그 속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료들과의 협력과 소통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생활에 있어 관계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의 유연하면서도 적절한 소통을 통해 목표를 함께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증명된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정을 숨기고 참아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압박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기도와 묵상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며 내면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 주변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겪는 자괴감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그러나 이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바탕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신의 가치와 능력은 타인의 인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가며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고 그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들이 빛나는 존재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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