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널 끝에서 이제 겨우 몇 걸음 걸어 나온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완전히 밝은 곳에 선 것도 아니고 아직 어둠이 완전히 물러간 것도 아닌 자리다. 숨쉬기는 조금 편해졌지만 몸에는 아직 긴장이 남아 있어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몇 달 전 이 내담자가 처음 상담실을 찾아왔을 때, 그는 의자 끝에 걸터앉아 거의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질문에는 짧게만 대답을 했고, 대화 중에 찾아드는 침묵을 견디지 못해 연신 손을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내담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편안한 듯 의자 깊숙이에 엉덩이를 밀어 넣어 앉았고, 말을 하다가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직도 그대로예요.”
우리는 회복을 너무 극적인 장면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완전히 달라진 상태, 완전히 밝아진 삶,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회복이라고 믿곤 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변화는 그렇게 큰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부분은 겨우 몇 걸음이다. 오늘 하루를 버텨 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정도다.
어려운 시간을 오래 견뎌온 사람들은 상황이 달라진 뒤에도 한동안 긴장을 풀지 못한다. 마음이 몸보다 늦게 따라와 주기 때문이다. 괜찮아졌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안심하지 못하고 안전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어둠에 오래 있었던 사람에게 빛은 기쁨인 동시에 낯선 것이다. 눈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상황이 나아졌는데도 마음이 따라오지 못해 당황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눈이 아직 빛에 익숙해지는 중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삶의 변화는 대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도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날들이 많아지고, 말없이 홀로 꾹꾹 누르며 견디는 시간이 짧아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문득 돌아봤을 때,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의 길도 늘 그랬다. 단번에 다른 자리로 옮겨지는 대신, 하루 치씩 걸어가게 하셨다. 광야의 길도 하루 치씩이었다. 만나도 하루 치였다. 새벽도 한 번에 밝아오지 않는다. 어둠과 빛 사이에 늘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어도 괜찮다. 터널 끝에서 겨우 몇 걸음 나왔더라도 그 자리는 이미 길 위다. 그 걸음이 작아 보이지만 사실, 가장 어두운 구간을 이미 지나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도착하지 못한 곳만 바라보느라 이미 걸어온 거리를 자주 잊어버린다. 삶은 도착이 아니라 걸어 나온 거리로 측정된다. 걸어온 거리를 돌아보는 순간, 비로소 알게 된다. 지금 마시고 있는 이 공기는 이미 터널 밖의 공기라는 것을.
김화순 소장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심리상담센터 엔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