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위하여
친구이지만, 평소에 삶을 진지하게 꾸리며 살아가는 존경할만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하는데 꼭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공증을 서달라는 것이었다. 남편과 합의하여 유언장을 작성하기로 했는데 공증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준비하는 친구였는데, 언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줄 아느냐며 자식들을 위해, 서로의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 유언장 작성에 합의하고 이를 실행하는 상황이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의 심리를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로 설명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그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부정하다가 임종을 맞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극도의 고통 앞에서도 수용하고 인정하며 희망에 가득 찬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나 살아온 환경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또한 다양한 양상을 갖는다. 죽음은 누구나 거쳐야 하는 인생의 마지막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가져오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죽음을 회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태도에 모순이 있어서 죽음의 보편성은 인정하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성적인 차원, 지적인 영역에서 수용은 하면서도 감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는 거부한다. 죽음을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불행한 일이라고 금기시한다. 사실, 죽음의 보편성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성찰하며,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남은 삶을 보다 성공적으로 영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과 임종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와 준비를 갖추는 것은 성공적인 노화의 필수 조건이 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일수록 죽음에 대한 불안감은 낮아지고 생활만족도는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고,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에 따라 죽음에 대한 불안, 삶의 태도,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노년기의 삶에는 ‘자아의 통합’이라는 발달적 과업이 있다. 지나온 삶을 회고하고 나름대로 정리하며 생을 마무리 짓는 과업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정리해 봄으로써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의 갈등과 죄책감을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통합이 이루어질 때 노년을 잘 보낼 수 있으며, 자아통합에 실패하면 자신에 대한 실망과 절망감을 느끼며 다가오는 죽음을 공포로 경험하게 된다. 특히, 죽음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환자의 경우 지나온 삶을 만족스럽게 회고한다면 다가올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지만, 분노와 후회를 가지고 과거를 회상하게 될 경우 임종이라는 사건이 매우 두렵고 피하고 싶은 사건이 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을 성장하게 하고 죽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죽음의 의미를 직시함으로써 죽음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건강과 삶의 만족도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잘 살다 갑니다”라고 웃으며 말할 마지막 그날을 위하여 자신의 삶이 끝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적극적이고 생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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