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등거리를 입는 지혜
이해 여름은 장마다운 장마로 인해 무덥고 습한 여름 기운을 더 무겁게 느끼게 한다. 쉬지 않고 내리는 장맛비에 곳곳에 피해가 속출하고 사람들의 마음 또한 축축 늘어져 쾌적한 그 무엇을 갈구하게 한다. 라디오에서 조상들이 입었던 ‘등등거리’라는 여름옷을 소개하는데 그 모양새를 상상만 해도 시원하다.
등나무 줄기를 가늘게 해 엮어 만든 등등거리는 주로 등토시와 함께 착용하는 여름옷이다. 그 위에 저고리를 입으면 옷이 살갗에 닿지 않고 바람이 옷 속으로 잘 통해 여름철에 아주 유용하다. 거기에 올라오는 바람과 지나가는 바람이 만나는 대청 마루에서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을 껴안고 누워있으면 그만한 피서가 있었을까 싶다. 코로나 이후 우리에게는 ‘거리’라는 개념이 매우 민감해졌고 그 가치 역시 소중해졌다. 물리적 거리를 두니 자연스레 심리적으로도 거리를 두게 되는 현상을 겪으며 비접촉하는 삶이 어색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생각의 관점을 조금 바꾸어 보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흐름이 오히려 거리 두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는 대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위로받고 공감받고 싶었던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더 크고 깊은 좌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오래도록 기억에 저장된다. ‘어떻게 내 마음을 모를 수가 있나’,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나’라며 속상해하지만 사실, 모를 수도 있다. 어쩌면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마음을 알아주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큰 실망으로 연결되는 일이 허다하다. 상처를 덜 받고 싶으면 적절한 거리 두기, 일정한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불편한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면 서로에게 더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감정이 극단으로 갈 수 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차단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거리를 두고 솔직하고 용기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과 여유를 갖는 것이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고 했다.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만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정도로만 대하라고 충고하였다. 따뜻함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거리를 둔다고 해서 너무 멀어져도 안된다는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존재인 만큼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상처를 덜 받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에 있어서 적절한 경계가 없다면, 연인과의 관계에 감정적 거리 두기가 없다면 이는 곧 집착이라는 위기로 변하게 된다. 둘 사이에 간격을 두는 일은 꼭 서운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를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마법일지도 모른다. 날마다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존재는 하나님 한 분뿐이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사이에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에서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스며드는 바람에 너른 숨을 쉬게 되면 우리의 생각이 유연해진다. 넓어진 생각은 나 자신과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고 부정적 시그널을 차단하는 힘을 갖게 한다. 지긋지긋한 부정적 사고와 감정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이만한 방어벽이 없다. 올 여름에는 마음에 등등거리를 착용하여 무더위를 시원하게 이겨내 보자.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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