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음악이 없다면 어떨까. 무척이나 밋밋하고 적막하게 느껴질 것이다. 곁에 항상 음악을 두고 있는 나로서는 음악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 음악이 곁들여져 있으며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이 극의 감동을 몇 배나 증폭시켜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블루스라는 음악은 찬송가와 흑인 영가로부터 발전했다. 흑인들이 목화밭에서 힘든 노역을 하면서 노동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 부른 노래, 그들의 삶의 애환이 블루스에 녹아 있다. ‘블루스(Blues)’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학설이 다양한데 그 중에 하나가 ‘블루(Blue)’는 몸에 난 상처로 인해 생긴 시퍼런 멍의 색이라는 주장이다. 노예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해방 후에도 여전히 어렵고 비참한 환경을 노래로 풀어내었는데 가사는 주로 고통 속 생활의 탄식, 괴로움, 슬픔과 절망감, 시련과 좌절감을 소재로 삼았다. 인간성이 완전히 무시된 삶속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야 조금이나마 자신의 존재를 생각할 수 있었기에 흑인들의 감정이 솔직하게 묻어나는 음악표현이 블루스라고 할 수 있다. 장기간의 상담을 마무리 할 때에 내담자들에게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버티고 견디고 넘어선 내담자들은 상담 초기와는 다르게 자신의 삶의 이야기들을 긍정적이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로 풀어낸다. 비록 상황이 극적으로 변화되거나 주변의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았을지라도 삶을 대하는 관점에 잔잔한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내담자에게 보여지는 칼라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색채전문기업 팬톤에서 2024년 칼라 트랜드를 대표할 색으로 ‘피치 퍼즈(Peach Fuzz)’를 선정했다고 한다. 어떤 색일까 검색해 보니 사랑스러운 복숭아처럼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팬톤은 매년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그 해의 칼라를 선정하는데 올해의 피치 퍼즈는 배려와 나눔, 타인과의 공존을 상징한다고 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겪고, 전쟁과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화합과 융합, 몸과 마음의 웰빙에 가치를 두게 됨에 따라 이 모든 상황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을 기대하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기후 위기, 참혹한 전쟁, 격화되는 경쟁의 분위기 속에 있다. 시끄러움과 혼란스러움, 답답함과 막막함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해도 희망의 칼라로 물들이는 인생을 그려가고 싶다.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또는 부여받은 본연의 색을 찾고 다른 사람들의 칼라와 함께 어우러지는 그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때로 도시가 회색빛으로 물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우울빛으로 물들어도, 어디에서나 스트레스가 달려들어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다채로운 칼라의 파동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워 보면 어떨까. 내면의 평화와 기쁨은 멀리 있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안에, 가까이에 있다.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 뿐이다. 성공과 목표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것도 좋다. 그러나 한 번쯤은 잠시 멈춰 지금 내 삶은 어떤 색으로 물들여져 가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창밖으로 내리는 함박눈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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