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기 때의 울고, 빨고, 미소 짓고, 매달리는 등의 애착 행동에 주 양육자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평생 애착의 질이 결정된다니… 이런 이론을 배울 때 참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타인과의 관계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 조건이 된다고 할 때, 지금의 대인관계 형태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니 서글픈 일이다.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 퇴사하고 6개월 정도의 시간을 부모님의 통제 아닌 통제를 받는 것에 양가감정을 호소했다. 청소년기 공부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 대학입학과 전공을 선택하는 일, 취업을 하는 모든 과정에 부모님이 관여했고 청년기를 지나 중년기를 향해 가는 시기에 여전히 부모님 슬하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해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인정과 칭찬의 결핍을 호소한 그녀는 결혼은 생각도 할 수 없고 대인관계의 폭이 줄어들고 위축되는 것은 물론 외로움과 우울감, 알 수 없는 불안을 경험하고 있었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약점이나 잘못 때문이라고 치부하거나 상대방이 문제라고 탓을 돌린다. 하지만 힘든 원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이나 상대방의 대인관계능력 때문인 경우는 드물다. 연인이나 부부관계, 그 어떤 관계든 지금 너무나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생애 초기부터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부모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린 시절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생애 초기에 있었던 대상과의 경험은 지금 현재 우리의 삶과 대인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애착 수준이 불안정할수록, 부모의 양육 태도가 비일관적이고 거부적일수록, 부모와의 의사소통이 잘 지속되지 않을수록 대인관계 문제를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견할 수 있듯이 회피애착이 높을 경우 타인에게 다가가고 친밀감을 유지하는데 방어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고, 불안애착 수준이 높을 경우 타인에게 거부 및 버림받을 두려움을 보이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부모는 어린 아이들에게 대인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르쳐주는 중요한 대상이다. 주 양육자가 어떻게 돌보고 관심과 애정을 쏟는지, 관심을 덜 보이는지 엄하게 다루는지 등의 양육 방법을 통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혹은 기대할 수 없는지를 배웠고, 원하는 것을 표현해도 되는지 어떻게 맞추어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도 될지, 권위 있는 어른을 신뢰하고 따라도 될지 혹은 거리를 두는 편이 더 유익한지를 배웠다. 사랑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써야만 하는지 아니면 항상 착하게 행동하지 않더라도 사랑을 받는지도 배웠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우리 몸에 저장이 되고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훗날 경험할 타인과의 관계가 행복할지 아니면 사랑 때문에 불행함을 겪을지는 대부분 생애 초기의 학습과 그 당시에 이루어진 관계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유명한 애착 이론의 대가 존 보울비는 아이가 이른 시기에 경험한 부모와의 관계가 훗날 안정적인 애정 관계를 이룰 수 있는 능력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어린아이였을 때 어른에 대해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지 못하면 부정적인 관계모델이 저장된다. 이것이 항상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우리의 행동을 좋지 않은 방식으로 제한할 때도 있다. 지금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면 생애 초기 관계를 반드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되돌아보는 일은 반복해서 일어나는 갈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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