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본질적으로 멈춤의 계절이다. 자연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며 에너지를 축적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리듬과는 다른 길을 간다. 연말의 분주함과 새해의 계획 속에서 더 빠르게 달려 나간다. 정작 멈추고 돌아보아야 할 시간을 외면하기 일쑤다. 칼 융은 “그림자를 직면하지 않고는 빛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겨울은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그림자를 마주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계절이다.
어둠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억눌린 감정, 숨겨진 욕구, 그리고 회피하려 했던 진실을 담고 있는 내면의 보고(寶庫)다. ‘그림자 작업(Shadow Work)’은 마음속 어둠의 조각들을 탐색하고 통합하며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우리는 대개 회피해 온 감정과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자유는 바로 이 어둠을 받아들이고 통합할 때 찾아온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던 한 내담자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성취를 목표로 달려왔지만 도달할수록 공허감만 커졌다. 상담을 하는 과정 중에 어린 시절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이 자신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사랑받기 위해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신념이 삶의 뿌리가 되어 이제껏 그토록 힘겹게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이 신념은 내면에 숨겨진 그림자로 작용하며 오히려 불안과 고립감을 키웠다. 잠시라도 쉬면 무가치해질 것 같은 두려움,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리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끝없이 달리기만 하는 삶은 결국 깊은 외로움과 허무함을 남길 뿐이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억눌린 감정을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직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짧은 시간 동안 감정을 기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무척 화가 난다” 혹은 “나는 몹시 외롭다” 같은 단순한 문장으로 시작해보라. 이런 과정을 통해 감정이 흘러가게 되고 억압되었던 것들이 표면으로 올라온다. 이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게 해주는 통로가 된다. 감정을 받아들이고 언어화하는 행위는 심리적 통합으로 이어져 억압된 부분이 치유될 수 있는 문을 열어 준다. 삶 속에서 의식적으로 쉼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하루 중 단 10분 만이라도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라.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음악을 듣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것도 좋다. 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내면의 회복을 위한 의식이 된다. 이를 ‘의도적인 회복’이라고 부르는데, 삶의 에너지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겨울은 또한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계절이다. 무심코 지나쳤거나 잊고 살았던 이들에게 진심 어린 메시지를 보내보라. 오래된 관계를 다시 연결하거나 상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정서적 안정과 자기 이해를 얻는다. 한 마디의 진심이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한 빛이 될 수 있다. 온기가 담긴 말 한마디, 혹은 시간을 내어 함께하는 소박한 행동이 나와 누군가에게 깊은 겨울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타인을 돕는 일은 결국 자신을 치유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심리학적 통찰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 겨울이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이 질문은 두렵지만 동시에 기회의 문을 열어 준다. 빅터 프랭클은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고 했다. 의미를 찾는 행위는 결코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데 있지 않다. 매일의 작은 선택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한 마디, 나 자신에게 허락하는 짧은 휴식, 그리고 타인에게 건네는 작은 온기가 삶의 의미를 만들어간다. 울 겨울,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고 그 속에 숨겨진 빛을 발견해보자. 그 빛으로 우리 자신과 타인의 겨울을 비출 수 있기를 바란다. 어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빛을 준비하는 자리다. 이 겨울의 끝자락 그 어디쯤에서 우리는 더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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