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딸이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의 정치 상황에 대해 이러저러한 질문을 한다. 외국 언론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빗대 하는 말이나, 같은 세대들 간에 마주치는 말들이 마뜩잖은 듯이 보인다. 에둘러 표현하는 나의 대답에 신경이 곤두서니 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 글을 쓰거나 생각을 말해야 하는 자리가 늘어나면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삶이 일치되지 않는 말을 할 때나 허위나 가식이 느껴질 때는 어디론가 숨고 싶다. 지식을 자랑하거나 설익은 생각을 늘어놓을 기회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에 생각의 얼레가 얽히곤 한다. 모든 말에는 책임이 따르겠지만 글이나 말에 얼마나 큰 책임감이 실리는지 두렵기까지 하다. 말과 행동에 있어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려면 완전한 침묵만이 정답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역사상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은 백성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왕이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책 읽기에 매진했고, 선왕인 태종이 섭정하면서 군사 및 병무 관련 업무를 도맡아 챙겨주었기 때문에 많은 업적을 남긴 군주가 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태종은 세종에게 “역사의 모든 악업은 내가 짊어지고 간다. 주상은 성군의 이름을 만세에 남기라”고 당부했다고 이한우는 <세종:조선의 표준을 세우다>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한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이란 천성이 착하고 책을 많이 읽거나 훌륭한 부모들 두었다는 것만으로 형성되고 발휘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군사적 장악능력이 충분하다고 해서 제대로 발휘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일하고 현장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며 또 그것들을 통해 체득한 안목과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착한 성품이나 독서와 같은 간접경험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건 스스로 책임지며 성실히 일하는 동안 체득되는 것이다. 그러니 정치 리더십에서는 실천과 체험이 바탕을 이루는 지식과 말이 더욱 중요하겠다.
어떤 말과 행동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망설이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사무엘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약점 투성이의 인간적인 지도자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사무엘은 하나님의 목소리에 충실했던 사제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사무엘도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이 스승 엘리의 부름인 줄로 착각하여 여러 번 어리석은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 죽는 날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사무엘의 인격은 당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렇다. 사무엘이 지상 최고의 권력을 지닌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며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용감성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강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권력의 원천은 하나님이며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돕는 도구로서의 역할이어야 함을 그는 일깨워주고 있다.
자신의 약함은 감추고 상대방의 약점을 드러내려 안달하기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반추할 줄 아는 인격을 갖춘 지도자가 못내 아쉽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목표를 잃고 좌절감으로 힘들어하는 시기에는 힘 있는 지도자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진실로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를 절실히 기다리게 된다. 소소하고 비본질적인 것에 힘을 쏟는 작은 사람보다는, 큰 그림을 그려주어 힘을 잃은 대중에게 불을 밝혀주는 영적인 지도자가 더욱 그립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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