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새벽,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걷다가 문득 시간을 떠올렸다. 그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은 사실, 멈춤과 선택의 틈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루라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무의미한 반복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삶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남는다. 시간은 그 자체로 방향을 제시하지 않지만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놓을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혼란과 긴장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 세대, 계층, 이념 간의 차이는 갈등의 원인이 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열쇠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시간이라는 틈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변화는 더디고 답답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시간을 대화와 성찰의 틈으로 바라볼 때, 멈추어 서서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중요한 가치를 되돌아볼 기회를 얻게 된다.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를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은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데 있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갇혀 있는 한 진정한 변화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화와 이해의 문이 열린다. 반대로, 갈등을 악화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들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고 분노와 단절만을 남기게 된다. 나쁜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는 집착은 마치 손으로 물을 움켜쥐려는 시도처럼 더 큰 갈등과 고통을 만들어 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는다. 한때 품었던 꿈, 소중했던 관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까지도 희미해질 때가 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잃어버림은 참 슬프다. 그러나 사라짐은 단순히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전환점이 되기에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 일본의 미학자 다니구치 시게루는 “텅 빈 공간은 공허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시간 속에서 사라진 것들은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다음 변화를 위한 여백이 된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라짐과 상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변화를 위한 시작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갈등과 상실도 그러하다. 그것을 단절로만 보지 않고 전환의 가능성으로 해석할 때 새로운 시작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의외로 비슷하다. 가족, 안전, 정의와 평화, 사랑과 우정과 같은 근본적인 것들이다. 세대와 계층, 직업과 환경을 넘어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들이다. 공동체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려면 이 기본적인 가치를 잊지 않아야 한다. 더 크고 복잡한 목표를 추구하다가 근본적인 가치를 놓치면 결국 길을 잃게 된다. 시간의 틈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지 성찰해야 한다. 시간은 누구도 붙잡을 수 없지만 그 흔적은 반드시 남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 다니구치 시게루가 말한 여백의 미학처럼,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의 빈자리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단순히 흘러가는 빈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채워갈 여백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갈등을 넘어서고 공통의 가치를 붙들며 미래를 다시 쓸 수 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가.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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