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기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해마다 한두 번쯤은 대학입학시험을 치루는 꿈을 꾸는 것 같다. 종료시간은 다가오는데 문제의 답을 내지 못해 애를 먹다가 잠에서 깨곤 한다. 아, 그 긴장과 초조함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대학입시의 계절, 수학능력시험을 치룬 학생들을 생각하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최선의 노력을 하고서도 치열한 경쟁에 놓이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겪게 될 좌절감과 허무함, 그 슬픔을 어찌할까 싶다. 한 번의 선택으로 평생의 삶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아픈 생활사가 언제쯤이면 느슨해질까 싶다.
단언하건대 살아가면서 문제를 만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만난 문제를 사라지게 하거나 돌이킬 능력도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문제 앞에 서면 한없이 나약해지고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문제 앞에서 느끼는 존재적 죄책감,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이라 치부해버리는 존재적 수치심, 이런 생각들이 옥죄어들면 세상으로부터 서서히 자신을 격리시키고 병리적인 증상으로까지 진행되기도 한다. 인생에서 겪게 되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는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한다. 좋은 일만 있게 해달라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게 해달라고, 대기업에 취직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때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조심스럽게 걸으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무사안일만을 구해도 뜻하지 않게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겪을 때도 다반사다.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 슬그머니 자리 잡는 생각이 바로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이다. 당한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고,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며 마음으로 안아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인생은 살아갈 만하다고 여겨진다. 위니캇은 안아주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의 자연스러운 돌봄의 기술을 말한다. 안아주기를 통해서 유아는 전능성을 경험하는데, 위니캇은 이것을 아동의 건강한 발달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로 보았다. 충분히 안전하다는 느낌을 경험함으로써 성장하면서 겪는 어머니의 공감 실패를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안아주는 환경은 상담 장면에서 제공되는 지지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규칙적인 시간에의 만남, 깊은 공감, 일관성 있는 소리와 공간, 분위기의 연속성 등은 마음의 상처와 분열된 심리를 담아주는 안아주기의 요소들이 된다. 쉬 좋은 날이 오지 않아도 슬픔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면 주어진 삶을 다시금 걸어갈 용기가 찾아온다. 그러니 너무 빨리 잊으려 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아무렇게나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을 그저 덤덤히 살아내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흔적만을 남긴 채 저만치 떠나가 버린 슬픔을 떠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고3 때 수능시험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학생이 재수를 했다. 열심히 했으나 이번에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나는 안되는 사람인가 봐요, 바닥에 내던져진 느낌이에요’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바닥을 쳤으니 이제 남은 건 튀어 오르는 거네요’. 어찌 보면 섣부른 위로일 수 있겠지만 튀어 오르기 위해 잘 먹고, 잘 자고, 잘 걸어보자고 제안했다. 순기능을 강화하는 것만큼 편안한 삶은 없다고 자신한다. 2024년 다이어리를 구입하려고 이곳저곳 알아보는데 ‘그래도 괜찮아!’라는 예쁜 글귀를 표지에 담은 다이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말이기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주문 버튼을 클릭했다. 이제 새롭게 다가오는 날들에는 내 자신에게 그리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그대로 충분하다고 말해주자. 따스한 햇살이 포근히 안아주는 듯 느끼도록 말이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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