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달력의 날짜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하루하루가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그저 버티는 날들의 반복처럼 다가왔다. 계획은 그저 계획에 그쳤고 기대는 자주 어긋났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조차 흐려졌고 시간은 흘러가지만 삶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멈춰 선 시계처럼 감각이 정지된 듯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멈춰 선 시간을 만나게 된다. 의지는 있으나 몸이 따르지 않거나, 몸은 움직이지만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이 있다.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손끝은 움직이지 않고, 응답 없는 침묵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 무엇인가가 가라앉고 있는 상태이다. 사실, 리듬이 꺾인 듯한 시간은 비정상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너무도 인간적인 시간이다. 신앙의 길에서도 이와 같은 중단의 시간이 있다.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고 하나님은 멀게만 느껴진다. 광야에 홀로 선 것 같은 허허로운 시기를 지나게 된다. 그러나 이 멈춤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멈춘 것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빠르게 달릴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멈춰 선 자리에서는 선명히 드러난다. 애써 외면했던 상처, 오래 묻어두었던 외로움, 외면하고 싶었던 두려움이 거울을 대하듯 다가온다. 그 감정과 기억들은 천천히 그러나 질서 있게 정렬되기 시작한다.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어둠 속 흙을 가르며 뿌리를 내리는 씨앗의 과정과도 같다. 나는 한 때 할 말이 많았던 사람이다. 위로해야 했고, 설득해야 했고, 설명해야 하는 일이 내 몫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침묵이 말보다 더 익숙해졌다. 사람을 계속 만나고 있었지만 마음은 안쪽으로만 접혀들었고 반응은 점점 줄어들었다. 기도는 짧아졌고 말씀은 더 이상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공허한 시간이 많아져 갔다. 처음엔 그것이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무너짐이 아니라 다시 정돈되기 위한 정지 상태였다. 말이 멈춘 자리에 믿음은 다른 방식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오랜 기도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시기를 경험한다. 말이 줄어들고, 감정의 동요가 잦아들고, 그저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 그것은 기도의 실패가 아니라 기도의 깊어짐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무엇을 더 얻기 위해 말하는 기도가 아니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해지는 기도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변화 없는 관계, 정체된 환경 속에서도 믿음은 여전히 뿌리를 내린다. 농부는 열매 맺지 않는 계절을 결코 헛되이 넘기지 않는다. 뿌리가 깊어져야 열매는 오래도록 지속되기 때문이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그 시간 안에서 우리의 삶의 리듬을 다시 조정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니 지금 고장 난 듯한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싶다. 괜찮다고, 지금 당장 달릴 필요는 없다고, 멈춰 있다는 것이 곧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속도를 잃은 시간을 살아내는 법은 완전한 회복을 이루는 데 있지 않다. 그 시간에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오늘 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언젠가 다시 걷게 될 날을 위한 숨을 고르면 될 일이다. 시간은 본래 고장 난 적이 없다. 우리가 시간에게 너무 빨리 대답하라고 재촉했을 뿐이다. 삶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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