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군사부일체
해마다 이맘때면 중학생 시절 영어 과목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떠오른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선생님은 아니셨지만, 늘 조용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서두르는 법 없이 학생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분이셨다. 특별히 학생들 모두를 차별 없이 대해주신 분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언어 영역에 관심이 있던 내게 영어를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다. 도내 영어 말하기 경시대회를 앞두고 학교에서 대회에 나갈 학생을 선발하였는데, 변변한 영어학원 한번 다닌 적 없이 선생님께 배운 게 전부였고, 단어를 외우고 기초적인 문장으로 대화를 하는 수준이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테스트가 진행되었고 기초적인 인사부터 시작해 점차 대화의 수준이 진전되는 방식이었다. 나는 몇 단계 지나지 않아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고 금방 울상이 되어버렸다. 그 순간 선생님이 내게 보내주신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할 수 있어. 연습했잖아. 자, 차분히 생각해봐’라는 선생님의 그 진지한 기다림에 결국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고,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스승의 날 유래는 1958년 충남 강경여자중고등학교의 청소년적십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적십자 단원들은 병환 중에 계신 선생님 위문과 퇴직하신 스승님의 위로활동을 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63년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처음으로 5월 26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는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뉴시스에 따르면, 스승의 날을 맞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남녀 교원 8431명에게 진행한 ‘스승의 날 교원 인식 설문조사’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교직을 선택하겠느냐’는 물음에 긍정 응답률은 29.9%에 그쳤다고 한다. 매년 이맘때 실시하는 이 설문 문항에서 긍정 응답률이 30% 아래로 하락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며, 직무 만족도는 33.6%로 6년 전(70.2%)의 절반 수준이고 ‘사기가 떨어졌다’는 답변도 78.7%였다고 한다. 선생님은 무조건 존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도 가슴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데, 맞닥뜨리는 현실은 스승의 날을 무색하게 한다. 몇 해 전,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고 우리 상담센터에서 상담치료를 받은 사례가 있다. 선생님보다 몸집이 컸던 학생에게 폭언과 폭행을 경험한 선생님은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에는 1년여 가까이 휴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인생에 있어 그 사건은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되었을까.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선생님에게도 무슨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는 희미한 생각을 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참 슬프게 느껴진다. 그 선생님은 학교로 복귀했지만 이전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학생을 대하기는 아직도 어렵다고 한다. 군사부일체의 의미가 빛바래고 있는 요즘이지만, 스승은 부모님과 같은 한 몸이신지라 그리 여기고 모시고 존중하여야 한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어디 그런한가 싶어 씁쓸하기까지 하다. 소중하게 떠올릴 스승이 계심에 감사한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스승이 소리도 없이 삶을 이끌어 주셨을까. 5월이 지나기 전에 마음 담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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