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씨는 직장 동료로부터 ‘왜 이렇게 짜증을 내냐’는 핀잔 섞인 말을 듣고 자신이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인 줄 몰랐다며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물어 왔다. 최근에 사람들이 ‘아 짜증나!’라는 말이 일상에서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흥행하는 영화를 보면서 속이 답답해 짜증이 폭발했다든지, 정치 관련 뉴스를 보면서 짜증이 올라와 물건을 집어 던졌다든지, 짜증이 나서 주변 상황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든지 하는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을 경험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기분을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기분이라는 것은 마음의 상태이면서 몸의 긴장과 활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짜증스러운 기분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누적되면 정신건강의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기분을 알아차리면서 일상생활에서 활기찬 에너지와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는 심리적 안녕감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혜진씨는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그냥 마음에 담아두거나 숨기려는 경향이 있었다. 직장에서 업무나 동료와의 관계에서 어그러지는 일이 있어도 펼쳐놓고 해결의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불편감을 그대로 담아둔 채 마냥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두통이 시작되었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가슴을 치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종종 욕을 내뱉기도 하였다. 인상을 쓰면서 동료나 가까운 이들에게 사나운 눈길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이러다가 동료들로부터 ‘쟤 왜 저래’라는 말을 들으며 상대하기 힘든 사람으로 치부되어 외면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분노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특정 대상이나 상황이 존재하기에 그 원인을 향한 의도적이고 즉각적인 반응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반면에 짜증스러움을 느낄 때는 분노와 유사한 기분이 들 수 있지만 특정 대상이나 상황을 향한 것이 아니기에 분명한 원인이 없더라도 짜증스러운 기분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상태는 분노와는 달리 특정 행동을 일으키는 충동성을 띠진 않지만, 기분 자체가 미치는 영향이 더 광범위하고 삶의 여러 장면에 노출된다. 어린 시절 자신의 감정이 잘 수용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상태를 알아차리기가 쉽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일어나는 감정에 구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편하고 뭔지 모르는 감정이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짜증과 신경질과 같은 태도로 나타나게 된다. 혜진씨가 그랬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가족들로부터 자신의 감정이 있는 그대로 보듬어지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팽개쳐지고 무시당하는 경험이 훨씬 더 많았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가 대답해 주지 않아서 속상하구나” 아이가 감정을 표현했을 때 부모가 그 감정에 대한 적절한 공감과 이해를 해주면 아이는 다양한 감정을 수용하고 직면하는 자원을 얻게 된다. 감정의 표현은 사랑과 인정 욕구를 전제로 한다. 적절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의 교류가 사람을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지 모른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상태가 명확하지 않고 정리가 되지 않아 무조건 짜증으로 표출하는 사람은 대인관계에 있어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쑥 올라 올 때는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가만히 머물러 볼 일이다. 화를 낼 일인지 소리칠 일인지 잠시 멈춘 후에 선택해도 늦지 않는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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