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것들과의 이별
벌써 추석 시즌이다. 시간이 정체된 듯한 상황 속에서도 자고 일어나면 성큼 낯선 날들 속에 들어와 있다. 화살과 같이 빠른 것이 시간이라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빨리 지나가는지. 한탄하면 무엇하리 이 순간에도 삶의 시계추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으니, 정해진 날들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또 어김없이 흘러간다.
부부 상담을 시작하고 상담 중반기를 맞는 부부가 있다. 남편 내담자가 아내는 몸이 아파서 못 왔다며 홀로 상담실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슬며시 아내와 함께 상담할 때 내비치지 못했던 속내를 꺼내놓는다. 아내는 시댁과의 왕래를 끊은 지 오래다. 명절 때가 되면 남편은 혼자서 인사를 다녔고 친지의 결혼식이나 행사에도 늘 혼자였다. 친척들이 자신을 얼마나 애처롭게 볼지 민망했다. 아내는 신혼 초에 형님 부부가 준 상처를 아직도 꺼내 들며 시댁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있다. 남편이 형제들을 도와주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아내와 상의 없이 몰래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러려니 포기하며 살고 있지만 명절 때만 되면 몸과 마음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며 남편 내담자는 서러운 마음을 표현했다. 명절증후군은 여성의 전유물처럼 생각되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사례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아내는 아내대로 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낼까. 가족 간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해야 할 명절이 그 누군가에게는 안타깝게도 불편한 가시방석이 되기도 한다. 부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명절이 주는 스트레스 점수가 32.4점이라고 한다. 부부싸움의 횟수가 증가할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 점수인 35점과 유사하니 명절 전후의 예민함은 비껴갈 수 없는 현실인가 보다. 명절증후군은 육체적 피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그 상황에 직면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미 명절은 화목하고 훈훈한 가족애가 넘쳐나는 자리가 아니라 잔소리와 날 선 감정이 교차하는 스트레스의 현장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외롭고 쓸쓸한 현대인들이 치열하게 세상과 싸우다가 그나마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는 날이 오히려 상처를 주고받는 날이 되었다는 것이 몹시 씁쓸하다. 명절에 보이는 갈등 중 대부분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명절의 피로감과 긴장감은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하고 평소 덮어 놓았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라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평소에 서로를 잘 이해하던 부부들에게도, 서로에 대한 공감과 조율은 더욱 요원한 이야기가 된다. 이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긴 호흡으로 반응을 늦출 필요가 있다. 거기에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평상시보다 조금 더 많이 내어 보이는 것이 명절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해묵은 감정이 똑같이 반복되어 폭발한다면, 미리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렵게 했던 문제의 목록을 적어보고 항목마다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을 적어 놓는다. 부부가 함께 앉아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도 좋다. 또한 분노, 슬픔, 억울한 감정을 억압하기보다 적절한 선에서 표현하는 것이 극단적인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명절 시즌을 맞아 가족이 서로에게 지니는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이다. 가족이기에 말하지 못했던 만큼, 어쩌면 가족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그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을지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덕에 명절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변화의 기회가 찾아 왔다. 해묵은 감정과 기억들을 본질로 되돌리기에 아주 적절한 때이다. 김화순∥중앙연회부설 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