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불안했을까
초기 기독교 발전에 있어 중요한 인물인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사도 회의가 끝난 이후 그의 행적에 관해서는 전해 내려오는 것이 거의 없다. 기록에 따르면 베드로는 안디옥이나 고린도 등으로 선교여행을 다녔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고 로마까지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의 마지막 또한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네로황제의 박해 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베드로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절대로 예수를 부인할 일 없다고 당당히 얘기했지만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 이외에도 베드로는 예수가 직접 자신이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예고에 항변하면서 십자가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기도 하였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가 기도하는 동안 자는 모습을 보여 혼나기도 한다. 또한 예수가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체포될 때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벤다. 이러한 장면을 떠올려 보았을 때, 베드로의 이미지는 성미 급한 허풍쟁이 또는 사고뭉치라고 할 수도 있고 심리 저변에 불안감이 내재 되어 있는 겁쟁이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룻밤에 세 번이나 예수를 부정한 것은 두려움과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 그 일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예수를 닮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는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예수라는 거대한 존재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사랑을 배우고 키워나가며, 평범한 어부였던 그가 자신이 세계 역사를 바꿀 거대한 교회의 반석이 되리라는 사실을 상상이나 해 보았을까? 예수는 계속해서 장차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닥칠 곤경을 암시하시면서 엄격한 생활 수칙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완전한 사랑의 헌신을 요구하신다. 베드로는 장차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는지, 어떤 고통이 닥치기에 이런 무서운 경고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지금 나에게 누군가 나타나 이런 경고를 하면서 완전한 사랑에의 헌신을 요구한다면, 얼마나 큰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이게 될까? 겁쟁이 베드로는 위대한 사명과 인간적으로 닥칠 위험을 동시에 예고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불안했을 것이다. 아니 베드로는 항상 불안했던 것 같다. 변화산에 올라 그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은 안전감을 누리는 편안한 삶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 하나로 위대한 일을 이룬 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예수는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고기를 잡게 도우시고 숯불에 떡과 고기를 구워서 대접하셨다. 베드로가 진정한 사랑을 알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이나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임을 고백한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 앞에 전적으로 주님께 인생을 맡길 때 불안이 극복될 수 있음을 드디어 온몸으로 배우고 습득하여 참 제자로 서게 된다. 예수님의 존재를 세 번이나 부정한 회한으로 베드로는 너무나 오랫동안 울고 또 울어 뺨에 눈물 자국이 깊게 패었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을 때에야 비로소 그 자책감에서 벗어나 기쁜 마음으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다소 동화적인 이야기가 있다. 도대체 얼마나 깊이 슬퍼했으면 눈물 자국이 얼굴 살을 깎았을까! 진정한 사랑이 부재한 이 시대에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은 베드로나 수많은 순교자들의 용기가 현실적인 욕망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진정한 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는 것이다. 참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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