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과 의견이 다를 때 느껴지는 불편함은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부부, 연인, 가족이나 오랜 지인과 대화하다 보면 생각이 엇갈려 어색한 침묵이 흐르거나 감정이 상하는 순간이 온다. 사소한 차이가 가치관의 충돌로 번지고 서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쌓이면 거리감이 생긴다. 정치적 입장, 사회 문제, 신앙적 태도처럼 삶의 중요한 부분에서 견해가 다를 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왜 저렇게 생각할까?’라는 의문과 불편함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런 불편함은 개인적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깊은 분열과 단절 속에 있다. 거리에서, 뉴스에서, 심지어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너무 쉽게 서로를 적으로 만든다. 보이지 않는 전선(戰線) 위에서 우리 편과 저들을 가르며 상대를 비판하고 배척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길을 가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사람도 적이 된다. 정치적 입장, 세대 차이, 혹은 단지 말투와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단절이 일어난다. 거대한 담장이 세워지고 그 안에서 같은 편끼리 뭉치며 반대편을 향해 돌을 던진다. 문제는, 이 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서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화가 사라지고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는 일조차 꺼려진다. 집단이 극단적으로 분열되는 것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정체성(identity)의 위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찾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점점 더 개인을 고립시키고 있다. 가족 공동체는 약해졌고 지역 사회의 유대도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정치적·이념적 집단이 새로운 가족처럼 기능하며 소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 안에서의 안정감이 커질수록 반대편에 대한 적대감도 함께 강해진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작동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만을 받아들인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상대의 말과 행동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해석한다. “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 “그들은 원래 나빠.” 이런 확신이 쌓이면 결국 대화의 문이 닫힌다. 그러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신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신념을 가지되 그것이 타인을 배척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는 가르침과는 다르게 우리는 너무 쉽게 원수를 만든다. 신앙 공동체조차 정치적 견해로 갈라지고 서로를 정죄한다. 기독교는 분열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를 지향하는 신앙이다. 이편과 저편을 나누며 구분하는 배타적 태도가 신앙과 얼마나 배치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과도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상대를 정죄하기보다 “당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라는 태도가 관계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신의 편견을 점검해야 한다. 얼마나 자주 정치적 신념을 신앙과 혼동하고 있는가? 특정 이념이 복음보다 앞서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 확신이 지나쳐 다른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지는 않은가? 화해와 정의를 균형 있게 바라볼 줄 아는 눈 또한 필요하다. 화해와 용서는 불의를 묵인하는 것이 아니다. 다름을 받아들이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책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적대를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되 불의한 행위를 옳다고 하지는 않으셨다. 기독교적 화해는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여정에 함께 하는 것이다. 상담실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는 미움이 깊었던 상대가 사실은 같은 두려움과 아픔을 품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에 일어난다. 정치적 반대편에 선 사람도 결국 나와 같은 불안과 희망을 가진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그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상처와 경험 속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일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은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화해의 사역’(고후 5:18)이며 교회의 거룩한 역할이다. 이 길 위에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사랑이 단지 머릿속 개념이 아니라 말과 행동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를 말이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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