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가 틀어질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이 문장은 관계를 설명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4월을 건너 5월로 들어선다. 계절의 변화보다 먼저 달라지는 것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4월이 바깥으로 열리는 시간이었다면, 5월은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이 시기가 되면 관계의 결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마음과 행동이 어긋나 있는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진심이었는데”라는 말이 어긋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말 속에는 이미 내 입장에서의 진심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느꼈는지, 무엇을 경험했는지는 그 말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결국 갈등은 진심의 부재라기보다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 데서 생겨난다.
이러한 현상을 정서적 불일치라고 부른다. 내면의 감정과 외부로 드러나는 표현이 어긋나는 상태를 말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통제하고, 걱정한다고 하면서 간섭하며,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느냐는 기대 속에서 무심함으로 대할 때, 상대방은 사랑이 아니라 부담과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특히 가족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해해 줄 것이라는 전제가 먼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는 이해만을 전제로 유지되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유지된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기준으로 타인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상처를 말하면 그것을 이해하기보다 억울함이 먼저 올라온다. “내가 얼마나 신경 썼는데”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는 의도가 아니라 경험된 감정 위에서 형성된다. 내가 주었다고 믿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가 실제로 경험한 감정이 관계의 결을 결정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관계는 반복해서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5월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진심이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으로 삼아 보면 어떨까. 그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 감정을 설명하기 전에 상대의 감정을 먼저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 위에 판단을 얹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보는 것이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대신 “그렇게 느꼈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갈등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 짧은 한 문장은 서로의 방어를 멈추게 한다. 정서적 공명의 순간이다. 말의 차이는 작지만 결과는 아주 다르다. 그 지점에서 서로의 내면이 맞닿고, 비로소 공감과 수용이 시작된다.
가족 관계 안에서 사랑이 무너지는 순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리 거창한 일들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로 틀어지고, 또 사소한 방식으로 회복된다. 피곤한 날 건넨 말 한마디, 무심코 스쳐 지나간 표정 하나, 대답하지 않고 미뤄둔 질문 하나가 온도를 바꿔버린다.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그 사랑을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가이다. 사랑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전달의 정확성에 더 가까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계는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행동으로 남고, 행동은 상대의 감정 안에서 다시 해석된다. 결국 관계는 의도가 아니라 반복해서 경험된 감정 위에서 형성된다.
조금 느리게 사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정확하게 사랑해야 한다. 내 마음을 설명하기보다 상대의 마음에 도착하려는 태도, 그것이 관계를 살린다.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이 의미를 가지려면, 진심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은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는 것이다.
김화순∥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심리상담센터 엔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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