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말해 주는 것
감리교회의 어른 한 분이 소천하셨다. “빈소를 차리지 말고 예배만 드려 달라”는 유언에 따라 섬기시던 교회에서 단 한 번의 환송예배만 드려졌다고 한다. 화려한 꽃도, 조의금도 없는 예배였지만 오히려 더 단정하고 품위가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담백한 그분의 선택이 그분의 삶을 가장 잘 말해 주는 듯했다. 함께한 이들은 “생전의 신념이 그대로 드러난 예배였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며칠 뒤, 코미디언계의…
감리교회의 어른 한 분이 소천하셨다. “빈소를 차리지 말고 예배만 드려 달라”는 유언에 따라 섬기시던 교회에서 단 한 번의 환송예배만 드려졌다고 한다. 화려한 꽃도, 조의금도 없는 예배였지만 오히려 더 단정하고 품위가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담백한 그분의 선택이 그분의 삶을 가장 잘 말해 주는 듯했다. 함께한 이들은 “생전의 신념이 그대로 드러난 예배였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며칠 뒤, 코미디언계의…
언제나 그렇듯 뉴스를 켜면 한숨부터 나온다. 정치권은 대의를 말하면서도 결국 자기 편의 유불리만을 따지고, 교회의 지도자들조차 공동체보다 자신의 자리를 더 지키려 한다. 사랑했던 사람들조차도 어느 순간 자기 생존의 본능 앞에서 관계를 쉽게 내던진다. 살아보면 볼수록 삶은 참 야속하고 허망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물가가 내려간다 하지만 정작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무겁다. 마트에서 카드를 긁고 나오면 손에…
아주 성실하게 신실한 마음으로 선교에 전력하는 선교사님이 계신다. 그분과 자주 전화로 얘기할 기회가 있는데, 선교사님은 항상 ‘할렐루야!’로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그 말이 싫은 것도 아니고 당연히 써야 하는 말임에도 귀의 어느 부분에서 무언가 덮이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대화의 반 이상이 ‘하나님의 뜻, 영광, 기도로, 영적 전쟁’과 같은 말들로 채워지는 분들도 계신다. 그 말들이…
인류는 달에 사람을 보내고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를 망원경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국 NOAA(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의 해양학자 제임스 가드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달의 표면에 대해 해저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바다 중 80~95%는 아직 미탐사 상태다. 심해를 시각적으로 직접…
한 소년이 AI 챗봇과의 대화를 끝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가 기댔던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응답을 반복하는 인공지능이었다. “나는 너를 이해해”라는 말 이면에는 그 어떤 마음도 없었다. 그는 이해받지 못한 채, 끝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벨기에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어쩌면 우리 곁에서조차도 AI 챗봇과 대화하던 사람들이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정신적 균형을 잃어가며 극단적…
관계의 다이어트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끊어내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줄줄이 이어진 단톡방에서 탈퇴하고 연락처를 정리하고 모임 횟수를 줄이는 식이다. 하지만 관계를 다이어트 한다는 것은 몸무게를 줄이는 것처럼 숫자를 줄인다기보다는 혈액순환의 개념에 가깝다. 핵심은 흐름을 회복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자리를 바로잡는 차원이다. 몸은 살이 조금 쪄도 혈액이 잘 돌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혈관이…
요즘 자존감은 거의 신앙처럼 여겨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을 믿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남들의 평가에 신경 쓰지 말고 당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존감이 높아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공식은 이제 모든 삶의 처방처럼 쓰이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강화된 자존감이 실제 삶을 단단하게 만들기는커녕, 때때로 더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유지하지만…
한동안 달력의 날짜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하루하루가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그저 버티는 날들의 반복처럼 다가왔다. 계획은 그저 계획에 그쳤고 기대는 자주 어긋났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조차 흐려졌고 시간은 흘러가지만 삶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멈춰 선 시계처럼 감각이 정지된 듯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멈춰 선 시간을 만나게 된다.…
언제부턴가 뉴스를 보는 것이 고통스러워졌다. 전쟁, 산불, 폭우, 붕괴 사고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가끔은 고통스러운 소식이 너무 많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비극이 감당하기 어려워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공감 피로(empathy fatigu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며 생기는 감정적 탈진을 의미한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