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노트 (3) “처단을 꿈꾸는 사회”

끝내 인정받지 못한 마음들   상담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한동안 바닥만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사람이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잠시 후 말을 고쳤다. “아니요…제가 당한 만큼 똑같이 겪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 오랫동안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억울함을 이야기했지만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냈고,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상담노트 (2) “말씀으로만 고쳐지면 안 될까요” 교회 밖에 없다고 말한 두 청년

20대 초반의 청년 두 명이 함께 상담실을 찾아왔다.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마약 끊고 싶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요.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말씀 들으면서요. 가끔 너무 안 돼서 무너지기도 하지만 살아보려고 하는데…이 친구는 아무것도 안 돼요.” 옆에 앉은 청년은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눈동자는 초점이 흐려져 있었고 질문을 이해하는 데도,…

상처를 준 사람은 왜 그 상처를 모를까

  한 내담자는 부모 이야기를 하다가 한참을 울었다. 큰 폭력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버림받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끝내 입 밖으로 꺼낸 말은, “한 번만 제 편이 되어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였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그의 부모 얼굴이 그려졌다. 그분들은 분명 자식을 사랑했다고 말할 것이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시간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

자기 몫 이상의 책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향한 비판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기대했던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고 국민들의 실망도 크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자리다.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평가받아야 한다. 다만 이번 일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정말 이 모든 책임은 감독 한 사람의 몫일까.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감독 혼자 만드는 것이…

상담노트 (1) 조용히 사라진 사람

  “제가 없어도 다 돌아가더라고요” 52세 권사 C씨는 교회 등록 27년이었다. 여선교회 임원, 식당 봉사, 속회 인도, 선교헌금 관리, 새가족 섬김까지 맡아왔다. 생일이면 교인들로부터 누구보다 축하를 많이 받았고, 행사 때면 늘 이름이 불렸다.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교회에 가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설명되지 않은 결정이 남기는 것

  선거는 끝났는데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투표용지 부족 문제로 시작된 논란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위가 계속되고, 선관위를 둘러싼 의혹과 해명이 오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누가 이겼는지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보다 과정을 믿을 수…

우리는 왜 연못을 떠나지 못하는가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매혹되어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자기 모습에 반해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르시시즘이라는 말도 자기애가 과도한 상태를 설명하는 표현이 되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한 이야기로 알고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연못에서 확인하고 있었다.…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백상예술대상에서 유해진 배우가 영화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왕의 남자]를 통해 그의 연기력에 그저 감탄했던 나로서는 배우에게 주어진 상이 당연하다 여겨진다. 동시에 영화 속 엄흥도가 단종에게 던진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라는 말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단순히 충성이나 관계에 대한 말처럼 들렸다. 시간이 지나며 이 대사가 다르게 들렸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배제되는…

나아지고 있는데 왜 더 힘들어지는 걸까

상담을 시작하고 나서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보다 더 불안하고 더 예민해진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문제가 풀리면 마음도 함께 편해질 거라고, 조금 나아지면 숨도 한결 잘 쉬어질 거라고 기대한다. 막상 그 지점에 가보면 그렇지가 않다. 하지만 이때의 불편함은 몸과 마음이 새로운 상태에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 사람은 자신을 설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