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마음이 상처를 입진 않았나요

마스크를 썼음에도 갸름한 얼굴과 고운 피부결이 드러났다. 말을 꺼내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때는 조금 느리긴 해도 오히려 차분하게 느껴졌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 꺼내어 보여준 손을 보는 순간, ‘아 어쩌면 좋을까’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새어 나왔다. 얼마나 손을 씻었던지 건조하기 이를 데 없이 거칠고 아파 보였다.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고 신체적인 증상으로까지 발현되었음에도 아무…

겸비의 계절

겸비의 계절 누군가 나를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게다가 한 공간 안에서 드러내놓고 다른 사람과 차별하여 대한다면 그 상황을 오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직장 상사로부터 노골적인 차별과 무시를 당한 한 여성은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의 경험이었으나 그런 상사의 모습을 보며 ‘참 유치하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그녀에게 엄지척이…

안아주기

안아주기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해마다 한두 번쯤은 대학입학시험을 치루는 꿈을 꾸는 것 같다. 종료시간은 다가오는데 문제의 답을 내지 못해 애를 먹다가 잠에서 깨곤 한다. 아, 그 긴장과 초조함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대학입시의 계절, 수학능력시험을 치룬 학생들을 생각하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최선의 노력을 하고서도 치열한 경쟁에 놓이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겪게 될 좌절감과…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프랑스의 작가 쥘 르나르(Jules Renard)의 <홍당무>라는 동화는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작가의 쓰라린 유년 시절 추억이 담긴 자전적인 소설로 알려져 있다. 주인공 소년의 붉은 머리와 주근깨로 인해 홍당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그는 성격이 괴팍하고 쌀쌀맞은 어머니와 자식에게 관심은 있으나 일에 바빠 무관심한 아버지, 약삭빠른 형과 소심한 누나와 살면서 따돌림을 당하고 어머니로부터…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들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들   배움의 자리에서 동고동락했던 친구가 아프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 작별의 인사를 나누지 못했기에 실감도 나지 않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과 모여 그 친구를 생각하며 오랜 시간 애도했다. 너무나 황망한 소식에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슬픔에 빠져있는 동안 나의 슬퍼하는 얼굴에 관심을…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답다는 노랫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곡조도 아름답고 잔잔한 기타 반주에 더해지는 가수의 목소리도 좋은데 가사의 내용이 마음에 와닿지를 않았다. 이제는 인생의 가을을 살고 있어서일까? 낙엽이 쌓이고, 낙엽이 흩어지고, 낙엽이 사라진 가을날의 외로움과 쓸쓸함의 심정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남성들의 가을 심정을 노래했다니…

새로운 발걸음을 떼라는 신호

새로운 발걸음을 떼라는 신호 스트레스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는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거리를 걷다 보면 축 늘어진 어깨, 초점을 잃은 눈동자, 하염없이 스마트폰을 넘기는 손가락을 자주 만나게 된다. 수많은 심리적 위험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는 모습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행동들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피곤한지 느낄 수 있다. 스트레스는…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이 하루가 열리는 이른 아침,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길가에 서 있는 자동차는 내 차 한 대뿐이었고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차량은 찾아볼 수 없는 한산한 도로였다. 신호가 바뀌었다. 자전거를 타고 건너갈 줄 알았던 아이는 생각과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면서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걸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다음 신호 앞에서도…

좋은 목리가 되려면 쉼이 필요하다

좋은 목리가 되려면 쉼이 필요하다 품위 있게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다. 식당 종업원에게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며 사람을 얕잡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고, 사람의 생김새나 차림새를 함부로 판단하는 눈동자를 갖고 있지 않으며, 사람을 대할 때 성적인 호기심이 발로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존중이 작은 몸짓과 태도에서 묻어나는 사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인자함으로…

어지러운 감정의 길 위에서

어지러운 감정의 길 위에서 어디가 길인지, 이 길의 끝은 어디인지 마치 흑암에 뒤덮여 있는 것처럼 온통 어지러운 형국이다. 곳곳에서 불어오는 경악할 사건들은 심장을 얼룩덜룩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았다. 도무지 멈출 줄 모르고 타오르는 태양,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이 사람을 마구 찌르는 무법의 난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발끝을 세우게 하는 철근 빠진 건물, 물 한 모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