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무슨 일이 있으세요?”
“아무 일도 없어요. 그래서 이상해요.”
그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한동안 힘든 일이 많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편찮으셔서 병원을 오갔고, 자녀 문제로 마음을 졸이던 시간도 있었다. 직장에서도 몇 차례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아버지의 병세도 안정되었고 자녀와 직장 문제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이제 좀 편하게 지내셔도 되겠네요.”
그런데 그는 편해진 것이 오히려 불안하다고 했다. 걱정할 일이 없는 날이면 무언가를 빠뜨린 것 같았다. 가족에게 전화해 별일 없는지 확인하고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큰 병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좋은 일이 생겨 기뻐하다가도 금세 다른 생각이 올라왔다. ‘이렇게 좋아해도 되나.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위험이 사라진 뒤에도 주변의 위험 신호를 계속 살피는 상태를 ‘과잉경계(hypervigilance)’라고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오래 겪었다면 이런 경계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었을 수 있다.
문제는 상황이 달라진 뒤에도 마음의 경보장치가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평안한 순간에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를 살피고,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그에게도 걱정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움직였고, 늘 다음 일을 예상하고 대비했다. 걱정을 내려놓는 것은 책임까지 내려놓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들은 이제 좋은 일만 남았다고 하는데 저는 왜 이럴까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아요.”
불안만큼이나 죄책감이 묻어 있는 말이었다. 긍정적인 감정을 연구하는 심리학에서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 감정을 충분히 누리거나 지속시키기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불러와 그 강도와 지속시간을 낮추는 반응을 ‘dampening’이라고 부른다. 기쁜 일이 생겨도 ‘별것 아니야’라고 생각하거나, 좋은 순간에 곧 끝날 일을 떠올리는 식이다.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기쁨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이 사람에게 기쁨은 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기쁨이 찾아오면 마음이 너무 빨리 다음 걱정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너무 기대하지 말자.’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아.’
‘지금 좋아했다가 나중에 더 실망하면 어떡하지.’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적고 미리 걱정하면 충격도 덜 받을 것 같다. 기쁨을 줄여두면 앞으로 받을 상처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의 방식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 보면 고통만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기쁨까지 함께 작아진다.
신앙 안에서는 이 문제가 다른 얼굴로 나타나기도 한다. 성경은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이 아직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는데 기뻐해야 한다는 말부터 앞서면 자신의 감정까지 신앙으로 평가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데 왜 감사하지 못하지.’
‘믿음이 있으면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쁨은 재촉한다고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그에게 물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마음껏 기뻐해 본 기억이 있으세요?”
“잘 모르겠어요. 좋아하고 있으면 꼭 무슨 일이 생겼던 것 같아요.”
“혹시 기쁜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기쁜 다음이 두려운 건 아닐까요?”
우리는 고난을 견디는 법에 대해서는 많이 배워왔다. 어려움이 닥치면 기도하고 인내하고 소망을 품으라고 배운다. 그런데 의외로 기쁨을 받아들이는 법은 잘 배우지 못한다.
기쁨에도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좋은 것은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 좋은 것을 누리는 용기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젠가는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충분히 사랑하고 평안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의 평안을 미리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시편의 기쁨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찾아오는 감정만은 아니다. 탄식하다가도 노래하고 두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한다. 삶의 불확실성 한가운데에서도 오늘 주어진 것을 받아들인다.
감사도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불행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이 생길 가능성 때문에 지금 주어진 좋은 것까지 미리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그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좋은 일이 생기면 항상 다음 일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이번에는 다음 일을 조금 늦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기쁨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기쁨에 오래 머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도 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맛있다고 말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 반가워하고,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간 저녁에는 내일의 걱정을 오늘로 당겨오지 않는 것. 그렇게 기쁨에 조금 더 머물러 보는 것이다.
오랫동안 불안을 통해 자신과 가족을 지켜온 사람에게 이것은 생각보다 큰 변화다. 위험을 알아차리는 능력만큼 좋은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도 삶에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을 견디는 힘을 성숙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좋은 순간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힘도 성숙의 한 모습일 수 있다. 그동안 걱정하며 살아왔다면 쉽게 긴장을 놓지 못한다고 자신을 나무랄 필요는 없다. 상황은 좋아졌어도 마음은 아직 변화를 바로 따라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저녁을 보내면서 알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걱정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기뻐해도 괜찮았다.

김화순 목사
( 중앙연회 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본 칼럼은 실제 상담 장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으며,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사례의 일부 내용을 각색하였습니다.>
출처 : weekly기독교타임즈(https://www.kmc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