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책임을 피하는 사람도 아니었던 그가 자주 했던 말은 “쉬어도 된다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불안해져요”였다. 직장에서도 인정받았고 교회에서도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왔다. 주변에서는 누구나 그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늘 긴장해 있었다. 잘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누군가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는지 조바심 내며 살폈다.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도 빠뜨린 것이 없는지 돌아보곤 했다.
“가만히 있으면 제가 게으른 사람 같아요.”
이런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잘했을 때 칭찬받고 기대에 부응했을 때 관계가 편안했던 사람은 사랑과 성취를 쉽게 분리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몸에 남아 있다.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안정된 관계를 ‘안전기지’라고 부른다.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끼는 아이는 오히려 멀리 가서 놀 수 있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이 아이의 발걸음을 자유롭게 해준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잘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를 충분히 하지 못하면 죄송하고, 봉사를 거절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삶이 잘 풀리지 않으면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찾는다.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런 질문이 숨어 있다.
‘이만큼 해야 하나님도 나를 기뻐하시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에 애잔함이 밀려온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부족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지 않으려고 너무 긴 시간을 애써 온 사람의 마음이 느껴져서다.
얼마 전 ‘가들리 플레이(Godly Play)’를 접하면서 유난히 마음에 남은 단어가 있었다. ‘Play’, 놀이였다. 놀이는 아무 곳에서나 시작되지 않는다. 아이는 안전할 때 논다. 주변을 계속 살피고 부모의 표정을 확인해야 하는 곳에서는 놀이에 깊이 빠지기가 어렵다.
마음껏 노는 아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믿음이 있다. 내가 여기 있어도 괜찮고, 실수해도 관계가 끝나지 않으며, 잠시 멀리 가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이다. 놀이는 그 깊은 신뢰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반대로 사랑과 인정을 계속 확인해야 하는 사람에게 삶은 놀이보다 수행에 가까워진다.
하나님과 인간의 첫 장면도 닮아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동산에 두셨다. 사람은 그분 앞에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관계가 깨진 뒤 사람은 숨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감추는 사람들이 있다. 실패한 모습과 흔들리는 믿음을 감추고, 때로는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까지 숨긴다. 하나님 앞에서도 괜찮은 사람으로 서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상담에서도 변화에 앞서 필요한 경험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경험이다.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해도 떠나지 않고, 실패를 말해도 실망한 얼굴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서 마음은 조금씩 힘을 놓는다.
안전해지면 사람은 움직인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선택을 해보고, 넘어졌다 다시 일어난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이 그런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 앞에서도 무엇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기도하다 말이 없어져도 괜찮으며, 마음이 흔들리거나 질문만 품고 앉아 있어도 편안할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다.
가들리 플레이가 새롭게 들려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성경 이야기를 놀이로 경험하게 하는 교육방법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다시 안전해지는 경험으로 다가왔다. 잘 듣고, 만져 보고, 상상하고, 침묵하며 자신의 속도로 이야기에 머무는 동안 아이들은 정답을 찾기보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법을 배운다. 어른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당신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으세요?”
“글쎄요. 잘 떠오르지 않아요.”
그분에게는 조금 더 노력하는 법보다 아무것도 해내지 않는 순간에도 관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필요해 보였다. 증명하지 않아도 곁에 계시고, 잠시 멈추어도 떠나지 않으시며, 그 품 안에서는 웃고 울고 질문해도 괜찮다는 믿음이 마음 깊은 곳까지 닿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조금씩 힘을 내려놓을 때, 잊고 있던 놀이가 우리 마음에서 다시 시작될 것 같다.

김화순 목사
중앙연회 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본 칼럼은 실제 상담 장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으며,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사례의 일부 내용을 각색하였습니다.>
출처 : weekly기독교타임즈(https://www.kmc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