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가 끝나고 나오면 그제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회의 중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던 사람이 사실은 그 결정이 마음에 걸렸다고 털어놓는다. 옆에 있던 사람도 비슷한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정작 의견을 나누어야 할 자리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여러 가지를 헤아린다. 지금 이 말을 해도 괜찮을지, 누군가 불편해하지 않을지, 앞으로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를 살핀다. 특히 회의를 이끄는 사람이 이미 방향을 정해 놓았다고 느껴지면 다른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 회의에서 한마디 하는 일에 생각보다 많은 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침묵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전 회의에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는데 분위기가 싸늘해졌거나, 질문했다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어떤 말이 환영받고 어떤 말이 불편해지는지를 익히게 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심성이 어느새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 습관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현상을 ‘조직적 침묵(Organizational Silence)’이라고 한다. 구성원들이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말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체념,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관계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다.
침묵이 반복되면 점차 자신의 판단마저 의심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불편한 것인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신의 생각을 접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제야 안도하게 된다.
침묵하는 태도에는 그동안 관계에서 겪어온 경험이 배어 있다. 의견을 표현했다가 비난받거나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반응을 먼저 읽는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찾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많은 조직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적을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려면 그로 인해 관계가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전감이 필요하다. 회의를 이끄는 사람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이전에 다른 의견을 냈던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기억한다. 질문에 지도자의 표정이 굳어졌는지,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이 존중받았는지, 불편한 이야기가 실제 논의로 이어졌는지가 다음 회의의 분위기를 만든다.
서로 다른 생각이 드러나는 일은 어느 자리에서나 불편하다. 특히 화합과 순종을 소중히 여기는 곳에서는 의견 차이를 관계의 균열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이 조직을 흔드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신앙의 문제로 번지면 생각을 드러내기 어려워진다. 누구도 다투지 않는 평온한 회의가 이어지지만 그 안에서 무엇이 생략되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에도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다. 이방인 신자들의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혔고, 그들이 함께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는 서로의 의견을 드러내고 논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오늘날의 회의가 그때보다 매끄럽게 진행된다고 해서 반드시 건강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모든 침묵이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신중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경험이 반복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 지도자는 반대 의견이 없다는 사실을 동의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같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현실이 만들어진다. 지도자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결정에 동의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쪽은 갈등이 없다고 여기고 다른 쪽은 갈등을 드러낼 수 없다고 느낀다. 회의는 순조롭게 끝났고 참석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다.
어느 날, 지도자는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는 사실에 당황할 수도 있다. 그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