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불가리아에서 동유럽·이슬람권 선교사 부부를 위한 ‘숨앤쉼 세미나’를 진행했다. 다른 문화와 종교적 환경 속에서 사역해 온 부부들이 일상을 떠나 서로를 다시 돌아보는 자리였다. 세미나에서는 각자의 기질과 성격을 이해하고 반복되는 갈등을 살펴보며 대화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대화하는 방법을 아는 것과 실제로 배우자에게 마음을 여는 일 사이의 거리감이었다.
배우자의 말을 끊지 않고 듣기,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기, 비난 대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등의 설명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배우자와 마주 앉으면 배운 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밑바닥에는 오랫동안 쌓인 원망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 번 기대했다가 실망한 끝에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부부가 갈등을 겪을 때 흔히 대화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부부에게는 대화할 때마다 상처받았던 경험이 더 많이 쌓여 있다. 상대의 말을 듣기도 전에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예상하고 또다시 실망할 것을 걱정한다.
반복된 실망은 상대를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는다. 처음에는 알아주기를 바라며 설명하고 부탁하지만 같은 일이 되풀이되면 비난이 거세지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기도 한다.
서로 다른 기질과 성격의 특성이 겹치면 오해는 더욱 복잡해진다. 한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즉시 이야기해야 마음이 놓이지만 다른 사람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쪽은 대화를 피한다고 느끼고 다른 쪽은 몰아붙인다고 느낀다. 신중한 태도는 무관심으로, 적극적인 감정 표현은 지나친 예민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갈등을 기질 차이로 설명할 수는 없다. 타고난 반응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은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돕지만 반복해서 상처를 주었던 행동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다름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경험되어 왔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자신에게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배우자에게는 외로움이나 거절의 경험이었을 수 있다.
선교사 부부에게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얽힐 수 있다. 사역과 가정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낯선 문화 속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도 많다. 도움을 청할 관계망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커지기도 한다. 함께 선교한다는 목표가 같아도 두 사람이 느끼는 부담은 다를 수 있다. 그 차이를 이야기하지 못한 채 부부의 어려움은 사역이라는 이름 아래 미루어진다.
관계가 달라지려면 좋은 말을 주고받는 횟수만 늘려서는 부족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비난받지 않고 서운함을 표현했을 때 이해하려는 반응을 경험하며 약속했던 변화가 일상에서 확인되어야만 한다. 이전과 다르게 반응하는 경험이 쌓일 때 굳어진 기대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신앙적인 권면에도 세심함이 필요하다. 용서하라는 말이나 사랑으로 품으라는 말이 관계의 회복을 앞당기지는 못한다. 상처를 충분히 다루지 않은 채 화해를 서두르면 상처받은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지 못한 채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이번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의 ‘숨앤쉼 세미나’는 선교사 부부가 사역의 성과를 보고하거나 평가받는 자리에서 벗어나 자신과 배우자를 이해하도록 마련한 시간이었다. 세미나를 마치며 선교사들은 멀리까지 찾아와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일정이 촘촘하지 않아 천천히 숨 쉬고 쉴 수 있었고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이 좋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서로 작은 선물을 건네고 받으며 기뻐하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들이 사역하는 선교지에도 꼭 찾아와 달라는 부탁에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선교지로 돌아가면 해결해야 할 문제와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쌓인 원망이 며칠 만에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자의 반응을 다르게 바라보고 그동안 듣지 못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관계를 다시 생각할 여지가 생긴다.
부부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순간, 그 속에는 이미 수없이 나누었던 대화가 남아 있을 수 있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일만큼 그동안 왜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없었는지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낯선 땅에서 수많은 사람을 돌보며 살아온 이들이 정작 자신의 지친 마음은 누구에게 내보일 수 있었을까. 그동안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응답하며 살아온 선교사 부부에게도 누군가의 돌봄과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