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의 한 대형 상업시설에서 무차별 흉기 공격이 벌어졌다. 평범하게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던 시민들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공격당했다. 열아홉 살 청년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건 이후 식당가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위협받은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일터다. 한 사람의 폭력이 수많은 사람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끔찍한 사건 앞에서 우리는 흔히 가해자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괴물이라는 말로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해칠 수 있게 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에게 분노와 공격성은 낯선 감정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화가 나더라도 상대의 고통을 생각하고 행동의 결과를 예상한다. 폭력의 위험은 타인을 고유한 삶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할 때 커질 수 있다.
분노가 원망으로 굳어지는 과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면 상대의 행동은 자신을 무시하거나 공격하는 증거로 해석되기 쉽다. ‘적대적 귀인 편향(Hostile Attribution Bias)’은 타인의 모호한 행동까지 적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이 곧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원망과 공격적인 사고가 결합하면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갈등을 해결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편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폭력에는 상대를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태도가 작용하기도 한다. 거절을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관계가 끝나는 것을 견디지 못해 위협한다. 강압적 통제는 상대의 일상과 인간관계를 제한하며 두려움으로 지배하려는 방식이다. 심각한 폭력 이전에 협박과 반복적인 통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친밀한 관계라는 이유로 이러한 행동을 감정싸움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과거에도 흉기를 이용한 살인미수 범행을 저질렀고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보호관찰을 받고 있었다. 이미 심각한 폭력의 전력이 확인된 사람이 다시 시민들을 공격했다는 사실은 위험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얼마나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지 묻게 한다. 감독과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폭력을 모두 외로움이나 마음의 상처, 정신질환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의 대다수는 폭력 범죄와 무관하며, 고립된 사람들 역시 대부분 타인을 해치지 않는다. 가해자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범죄의 책임을 가볍게 하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가려서는 안 된다.
반복적인 협박과 스토킹, 폭력의 전력과 구체적인 위해 위협은 대화와 화해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경찰과 전문기관의 개입을 연결해야 한다. 교회가 소중히 여기는 용서와 화해도 피해자에게 위험한 관계를 견디도록 요구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관계에서는 화해보다 분리와 보호가 먼저 필요하다.
폭력은 사건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의 삶에 고스란히 남는다. 텅 빈 상가의 모습은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상인들은 생계를 걱정하고 시민들은 익숙한 장소를 두려워한다. 한 사람의 공격이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일상의 안전감까지 흔들어 놓은 것이다. 피해자와 가족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회복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가해자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생각한다. 이제는 그 생각과 함께, 이미 드러난 위험을 누가 살피고 있었는지 위험을 호소하는 사람의 말을 누가 듣고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모든 폭력을 미리 막을 수는 없지만 확인된 위험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일은 가능하다. 누군가의 생명이 위협받은 뒤에야 위험을 알아보는 사회에서,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