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본다’라는 말이 요즘처럼 무게감 있게 다가온 적이 있을까. 가족으로부터 시작해 가까운 지인, 상담의 구조,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이 돌봄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하기에 누가 누구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무거운 숙제처럼 다가온다.
심리 및 정신건강 분야에 인공지능(AI)의 역할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불안을 예측하고, 우울 점수를 계산하며, 자살 위험 신호를 분류하는 알고리즘은 이미 현장의 문턱을 넘어섰다. 초기 상담, 정서 모니터링, 위험군 선별과 전문가 연결은 이제 기술의 역할이 되었다.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AI 기반 정신건강 앱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 마음의 고통을 말로 꺼내는 문턱을 낮추는 데 분명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비용과 낙인, 물리적·심리적 거리의 장벽 앞에서 실제적인 대안이 된다.
AI 기술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가운데 ‘마음의 고통이 과연 데이터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목회 돌봄과 심리치료가 가진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데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안전하게 토로할 수 있도록 곁에 머물며 동행하는 일일 것이다. 데이터로 증상의 강도와 빈도를 계산할 수는 있어도, 고통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삶과 신앙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상호 관계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가. 설명은 충분히 했지만, 마음은 예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해결책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들어주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와 기술의 대입이 아니라 비난이나 판단 없이 함께 머물러 줄 사람이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돌봄은 속도가 빠르고 정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고통은 정리도 되어 있지 않고 표현되는 감정과 모순된 말,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의 형태로 드러난다. 혼란을 견디며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은 효율로 환산할 수 없고, 성과로 보고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돌봄의 본질이 드러난다.
정부는 효율과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AI 기반 정신건강 서비스를 공공 영역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한다. 인력 부족과 지역 격차, 과중한 현장 부담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흐름이다. 당연히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질문이 필요하다.
기술이 고통을 분류할 수는 있어도 고통 앞에서 함께 있어 줄 수 있는가. 위험을 감지할 수는 있어도 불안과 떨림으로 일그러져 있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가. AI가 위험 신호를 놓쳤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우리는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 가장 연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새로운 기술의 대상이 될 때, 그대로 침묵해도 되는가.
기술을 거부하기 위한 질문들이 아니다. 오히려 돌봄이 끝까지 사람의 몫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기 위한 것이다. AI 시대에 목회 현장에서 더욱 분명히 세워야 할 기준이 있다.
첫째, 관계의 기준이다. 회복은 빨리 해결된다고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어도 괜찮겠다는 신뢰가 쌓일 때, 그 사람만의 속도로 천천히 조금씩 마음이 열린다. 기술은 도움의 문을 열어 줄 수는 있지만 문 안으로 함께 들어가 주는 역할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둘째, 책임의 기준이다. 기술은 정보를 정리하고 가능성을 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이 옳았는지 그 결과를 누가 감당할 것인지는 결국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마음을 다루는 일에서 책임은 위임될 수 없다.
셋째, 윤리의 기준이다. 새로운 기술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선택의 여지가 적고 도움을 거절하기 어려운 이들일수록 그렇다. 그렇기에 기술의 가능성보다 먼저 이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 사람을 더 보호하는 방식인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존엄의 기준이다. 사람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을 문제로 보지 않고 부름받은 존재로 이해해 왔다. 기술은 부분적으로 도울 수는 있어도 인간의 존엄을 대신 설명하거나 부여할 수는 없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을 지워서는 안 된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관계를 통해 회복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는 없다. 이 오래된 진실을 지켜내는 일, 그것이 기계에게 맡길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다.
김화순 소장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심리상담센터 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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