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초반의 청년 두 명이 함께 상담실을 찾아왔다.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마약 끊고 싶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요.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말씀 들으면서요. 가끔 너무 안 돼서 무너지기도 하지만 살아보려고 하는데…이 친구는 아무것도 안 돼요.”
옆에 앉은 청년은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눈동자는 초점이 흐려져 있었고 질문을 이해하는 데도, 대답을 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대답은 느리고 짧았다. 몸은 긴장되어 있었고 불안해 보였다. 함께 온 친구가 대신 대답을 하곤 했다.
“얘는 아무것도 못해요.”
중학교 때 처음 시작했다고 했다. 여러 번 끊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병원으로 연결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입원조차 받아주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마지막에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누구 도움도 못 받아요. 교회밖에 없어요.”
그리고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간절함이 들어있는 눈빛으로 물었다.
“말씀이랑 예배로 고쳐질 수 있나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더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교회를 찾아온다. 병원 치료도 어렵고, 가족들도 지쳐 손을 놓았고, 친구들과의 연결도 끊어졌다. 게다가 자기 자신도 믿을 수가 없다. 이런 때에 교회는 쉽게 두 가지 실수를 한다.
하나는 모든 것을 영적 문제로 해석하는 것이다. 기도하면 된다.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 회개하면 달라진다. 다른 하나는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너무 빨리 물러나는 것이다.
“전문 치료 기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목회 상담적 접근에서는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중독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영성과 무관한 문제도 아니다. 오랜 사용은 사람의 몸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과 관계를 맺는 힘, 살아보고 싶은 마음까지 무너뜨린다. 그래서 회복에는 치료가 필요하고, 안전이 필요하고, 연결이 필요하다. 동시에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필요하다.
그날 상담실에서 나는 그 청년들에게 말했다.
“말씀과 예배가 치료를 대신할 수는 없어요.”
둘 다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말씀과 예배가 치료를 포기하지 않게 도울 수는 있어요.”
교회는 병원이 아니다. 하지만 병원으로 가는 길에 함께 걸어줄 수는 있다. 교회는 중독을 없애지는 못해도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 머물 수는 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기적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끝까지 사람으로 대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의 말이 없던 청년이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하나님이 저를 포기한 줄 알았어요.”
그날 상담실에서 일어난 일은 눈에 띄는 변화가 아니었다. 기도 한 번으로 달라진 것도 아니었고, 예배로 중독이 사라진다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오겠다고 말하는 일과 누군가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회복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김화순 목사 중앙연회 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출처 : weekly기독교타임즈(https://www.kmc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