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토록 듣고 싶었던 “미안해”라는 말을 마침내 들었다. 상대가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다. 이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때로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화가 치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대가 사과까지 했는데 왜 받아주지 못하는지, 이 정도면 그만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용서라는 숙제까지 따라붙는다. 용서하라는 말씀을 알고 있으니 마음이 풀리지 않는 자신을 보며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마음에는 마음의 시간이 있다. 사과한 사람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이 사건의 마침표가 될 수 있다. 그 말을 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용기를 냈을 수도 있다. 반면 사과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제야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겪은 일을 상대가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그때의 내 고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여기서 사과의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미안해, 그런데 나도 그때 힘들었어.”
“미안하지만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내가 사과했으니까 이제 그만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여기에는 분명 사과라는 말이 들어 있는데 듣고 있으면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다. 사과를 통해 받고 싶은 것은 미안하다는 몇 글자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관계 회복에 있어 인정(validation)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여기서 인정은 상대의 주장에 모두 동의한다는 뜻과는 조금 다르다. “그 일이 당신에게 그렇게 경험되었다는 것을 알겠다”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잘못의 인정보다 고통의 인정일 때가 있다.
“내가 한 일 때문에 네가 그런 시간을 보냈구나.”
이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아픔이 비로소 상대에게 닿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내가 겪었던 시간을 누군가 함께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 마음의 무게가 달라지는 순간이다.
내담자가 상대의 사과 내용을 반복해서 이야기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사과가 부족해서 그러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이 붙들고 있는 지점이 드러난다. 사과의 횟수가 부족했던 것도,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상대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때 남는 것은 분노만은 아니다. 서운함도 있고 허탈함도 있으며, 기대했다가 다시 실망할까 봐 마음을 거두는 쪽으로의 움직임도 함께 나타난다.
사과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지우지 못한다. 상처받기 전의 관계로 되돌려놓기도 어렵다. 대신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줄 수는 있다. 그 사건을 이제 혼자만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이다. 누군가가 내가 겪었던 일을 함께 알고 있다는 것, 내가 과장한 것도 괜히 예민했던 것도 아니었다고 느끼게 되는 것, 그런 경험이 생기면 마음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그때의 일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용서도 그런 자리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용서를 서둘러 마음을 정리하는 일로 받아들이면 아직 아픈 사람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 된다. 상대가 사과했다는 이유로 내 마음까지 같은 날 정리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마음이 따라오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신뢰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좋은 사과에는 마침표보다 여백이 필요하다. 내가 사과했으니 이제 끝내자는 마음보다, 상대에게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들을 수 있는 여백 말이다. 그 여백 안에서 사과는 한 번의 말에서 관계의 경험으로 서서히 바뀌어 간다.
사과를 받았는데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고 자신을 너무 서둘러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아직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는지 살펴보아도 괜찮다. 인정받고 싶은 고통이 남아 있는지, 다시 신뢰를 쌓기 위해 확인해야 할 것이 있는지, 혹은 이제는 충분히 멀어져야 하는 관계인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