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등을 겪던 부부의 상담 내용 중에는 둘째 아이를 낳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남편은 형제가 있는 편이 첫째에게도 좋고, 더 늦기 전에 둘째를 낳았으면 했다. 아내는 단호했다.
“저는 다시는 못 해요.”
남편은 아내가 아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라며 답답해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내의 얼굴은 굳어졌다. 몇 차례 상담이 이어진 뒤에야 아내는 속마음을 꺼냈다.
“첫아이를 낳고 제 시간이 전부 사라졌어요. 몸도 많이 달라졌고요. 직장에 복귀했지만 언제든 제 자리가 없어질 것 같았어요. 이제 겨우 제 삶을 찾은 것 같은데, 또 처음부터 희생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아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출산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어렵게 되찾은 일과 생활, 몸과 자유가 다시 사라지는 일이었다. 둘째를 낳으라는 말이 자신을 한 번 더 내려놓으라는 요구처럼 들리고 있었다.
이 부부를 만나며 요즘 청년들이 사랑과 결혼을 대하는 마음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받고 싶지만, 관계가 시작된 뒤 자신에게 무엇이 남을지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설렘보다 책임이 앞서 보이고, 결혼을 생각하면 집과 소득, 출산과 경력 단절부터 헤아리게 된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외모와 몸매, 직업과 연봉, 학력과 거주지가 판단의 기준으로 따라붙는다. 소개팅 앱에서도 직업과 소득, 학력과 자산을 인증해야 한다. 경제력이 부족하면 만남의 기회조차 얻기 어렵고, 소셜미디어 속 사진과 팔로워 수, 생활 수준도 사람의 가치처럼 읽힌다. 이것이 청년들에게는 ‘나는 조건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연애 경험이 없는 청년에게 붙는 ‘모태솔로’라는 말도 가볍지만은 않다. 사랑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인데 관계에 서툴고 매력도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아 사랑을 미루는 청년들도 있다. 자기 시간을 누리고 일을 성취하며 살고 싶어 한다. 누군가와 시간과 감정, 생활을 나눌 여유가 남아 있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특히 여성에게는 몸의 변화와 양육 부담, 경력의 중단이 자신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만 불리는 삶을 보아왔다. 사랑이 아름답다는 말만으로 그 두려움까지 사라지기는 어렵다.
청년들이 이기적이거나 사랑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사랑한 뒤 자신이 사라질까 봐 주저하는 마음이 더 커 보인다. 주거와 고용이 불안하고 자기 한 사람을 지탱하기에도 벅찬 현실에서 다른 사람의 삶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는 것이다.
기성세대와 교회는 “눈이 너무 높다”, “좋은 때를 놓치면 후회한다”, “믿음으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걱정에서 건네는 말이겠지만, 사랑할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에게 ‘때를 놓쳤다’는 말은 삶이 잘못되었다는 선고처럼 들릴 수 있다.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사람처럼 바라보는 시선도 외로움을 깊게 만든다.
결혼과 출산을 권하기 전에 돌아볼 것이 있다. 청년들이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도록 어떤 삶을 보여주었을까. 결혼한 뒤에도 서로의 꿈과 일을 존중하고, 한 사람만 희생하지 않도록 곁을 내어주었을까.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온전한 한 사람으로 환대하고 있을까.
상담이 이어지면서 남편은 아내를 설득하려던 말을 내려놓고, 첫째를 키우는 동안 아내가 무엇을 잃고 혼자 감당했는지 듣기 시작했다. 아내도 자신의 두려움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의견이 같아지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전과 다른 대화가 흐르기 시작했다.
사랑에는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사람만 계속 사라져야 유지되는 관계라면 사랑도 두려워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곁에 머물면서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경험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한 뒤에도 나로 남고 싶은 마음
김화순 중앙연회 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본 칼럼은 실제 상담 장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으며,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사례의 일부 내용을 각색하였습니다.>
출처 : weekly기독교타임즈(https://www.kmc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