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없어도 다 돌아가더라고요”
52세 권사 C씨는 교회 등록 27년이었다. 여선교회 임원, 식당 봉사, 속회 인도, 선교헌금 관리, 새가족 섬김까지 맡아왔다. 생일이면 교인들로부터 누구보다 축하를 많이 받았고, 행사 때면 늘 이름이 불렸다.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교회에 가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돌아가게 될 줄 알았다. 담임목사가 연락했다. “권사님, 무슨 어려움 있으세요?” 그가 말했다. “아니요. 아무 문제 없어요.” 그리고는 상담실을 찾아온 것이다.
상담실에서는 우울을 호소했지만 첫 질문은 의외였다. “제가 믿음이 식은 걸까요?”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갈등도 없었고 상처를 준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내가 교회에 안 가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구나.’ 누군가 연락해 주기를 기다렸다. 안부를 묻고 찾아와 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조용했다.
그리고 더 괴로운 감정이 찾아왔다. ‘이런 걸 기대하는 내가 유치한가.’ 그래서 더 말하지 못했다. 침묵하던 끝에 그가 말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돌아보니까 제가 하던 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잠시 후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제가 없어도 다 돌아가더라고요.”
이 경험을 단순한 서운함으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오랫동안 C씨가 경험한 관심은 대부분 무언가를 하고 난 뒤에 찾아왔다. 봉사를 했으니까, 책임을 맡았으니까, 누군가를 도왔으니까. 물론 교회 공동체가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험은 오래 반복되면 하나의 공식이 만들어진다. 내가 하는 일이 사라지면 나도 함께 희미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인정욕구나 교만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헌신한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역할이 줄어들거나 멈추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봉사가 멈춘 것이 아니라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때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더 열심히 매달리거나, 아무 말 없이 사라지거나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같은 질문에서 출발하는 반응이다. 내가 없어도 괜찮은가.
돌이켜 보면 담임목사의 전화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어려움 있으세요?”라는 질문은 C씨에게 닿지 못했다. 그 질문은 사건을 찾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C씨의 문제는 사건이 아니었다. 누군가 상처를 준 것도, 밀어낸 것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너무 잘 적응하며 살아온 끝에 역할과 존재가 붙어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어쩌면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었을지 모른다. “권사님, 요즘 어떠세요. 많이 지치지는 않으셨어요?”
사건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묻는 것, 어쩌면 그 질문이 C씨가 27년 동안 기다려온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교회는 사람을 잘 환영한다. 그러나 오래 함께 있었던 사람은 놓칠 때가 있다. 새가족에게는 이름을 묻지만 오래된 사람에게는 무엇을 맡고 있는지, 어디에서 봉사하는지의 역할을 묻는다. 그러는 사이 어떤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사람이 아니라 역할로 남는다. 하지만 사람은 역할만으로 오래 버티지 못한다. 누군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을 때 다시 살아갈 힘을 낸다.
어쩌면 교회를 떠난 사람들 중 일부는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가 사라지는 경험을 견디지 못해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김화순 목사(중앙연회 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본 칼럼은 실제 상담 장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으며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사례의 일부 내용을 각색했다. (필자주)
출처 : weekly기독교타임즈(https://www.kmc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