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과 몸에는 피로가 배어 있었다. 더 이상 어디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상담실을 찾은 듯했다.
그녀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 길을 따를 힘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따르지 않자니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던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 같아 괴롭다고 했다. 여러 기도 모임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받아보았지만 확신이 생기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상담 현장에서 자주 보게 되는 모습이다. 신앙이 깊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서 반복되는 흐름이다. 기도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날 위로가 되지 않으면 다음 날 또 다른 곳을 찾는다.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더 간절하게, 더 많이, 더 자주 찾아다닌다. 기도를 받는 순간에는 분명 변화가 있다. 눈물이 나고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 있고, 무언가 정리된 것 같은 상태가 된다. 그러나 그런 상태는 오래 유지되지는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나 다음 날이 되면 비슷한 불안이 다시 올라온다. 그러면 다시 기도를 받으러 간다. 이전보다 더 분명한 응답을 원하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위로보다 불안을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
이 반복이 이어질수록 방향이 서서히 바뀐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지만 점점 그때 느꼈던 상태를 다시 얻고 싶어진다. 기도는 만남이라기보다 경험이 되고, 예배는 관계라기보다 마음을 조절하는 수단처럼 사용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도를 잘하는 사람을 찾게 된다.
이쯤 되면 기도를 받으러 다닌다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서 받아야 하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 중심이 이동한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기준이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효과성을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인간의 일반적인 심리 구조와 맞닿아 있다.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감정 앞에서 빠르게 괜찮아지고 싶어 한다. 불안과 공허는 오래 붙들고 있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래서 그것을 잠시라도 덜어줄 수 있는 방식을 찾는다. 그 방식이 신앙의 형태를 띠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위로가 반복될수록 감정을 견디는 힘이 강화되기보다 오히려 위로가 없으면 버티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이전보다 더 자주, 더 강한 위로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또 다른 곳을 찾는다. 확실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일정 지점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계속 반복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는 때가 온다. 그때 질문이 바뀐다. 어디에서 기도를 받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이 감정을 이렇게까지 견디기 어려운가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신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불안을 즉시 없애주는 기능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붙드는 힘이다. 위로는 필요하지만 위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위로가 없을 때에도 관계는 유지되고 더 깊어진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더 많은 기도가 아니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해 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빠질 때 신앙은 쳇바퀴를 돌 수밖에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위로는 필요하다. 따뜻하고 힘이 된다. 그러나 위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위로를 찾아다니는 삶에서 벗어나, 위로가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 필요하다. 신앙은 그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
김화순∥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심리상담센터 엔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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