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해요”라는 말은 정치나 세대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나오고, 가족이나 동료에 대해서도 듣게 된다. 이미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 끝났다는 뜻으로 들린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산다. 메시지를 보내고 수많은 댓글을 달고 자신의 생각을 SNS에 올린다. 그런데 정작 생각이 다른 사람과 말을 섞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올해 국민통합위원회 조사에서는 국민의 92.4%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정치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83%가 세대갈등을 심각하게 보았고, 74%는 이를 직접 경험했다고 답했다. 다른 세대와 대화하고 협업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사람도 10명 중 4명에 이르렀다. 갈등 자체보다 서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사람은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에는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확증편향이라고 부르는 이런 성향은 새롭지 않다. 달라진 것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굳이 접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다. 보고 싶은 채널을 골라 보고, 불편한 사람은 차단한다. 알고리즘도 내가 본 것과 비슷한 콘텐츠를 다시 보여준다. 선택한 정보가 어느 순간 내가 보는 세상의 범위를 정해버린다.
그러다 보면 생각의 차이가 그 사람 전체에 대한 판단으로 옮겨간다. 저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는 순간,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볼 이유도 줄어든다.
상담에서도 “이제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부부가 크게 싸울 때보다 이런 말을 할 때 관계를 유심히 보게 된다. 화를 내고 따지는 사람에게는 상대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으면 하는 기대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왜 내 마음을 몰라줘?”라는 분노 안에도 바라는 것이 들어 있다.
반면 “말해 봐야 소용없어요”라는 말은 기대를 거두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상대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설명도 질문도 줄어든다. 대화가 사라지는 것은 상대에 대한 결론이 내려졌을 때일 수도 있다.
보수와 진보가 다르고 세대마다 경험과 가치관이 다른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차이를 가진 사람을 이미 충분히 파악했다고 여기는 데서 생긴다. 젊은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거나 기성세대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저쪽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안 된다고 결론 내리는 순간, 한 사람은 세대와 정치 성향, 성별과 지역 같은 몇 개의 범주 안에 들어가 버린다.
미워하는 것보다 이미 다 파악했다고 믿는 것이 대화에는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 판단이 끝난 사람에게는 궁금한 것이 남지 않고, 질문이 사라지면 상대의 말이 들어올 틈도 줄어든다.
같은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상대의 신앙까지 의심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판단이 다르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느 순간 대화는 상대를 이해하는 일보다 누가 옳은 신앙을 가졌는지 확인하는 쪽으로 흐른다.
물론 반복되는 공격과 모욕을 견디면서까지 대화를 이어갈 이유는 없고, 모든 의견의 차이를 좁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대를 너무 빨리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화의 목적을 상대의 생각을 바꾸는 데만 두면 대부분 실패하기 마련이다. 신념이나 가치관이 몇 마디 말로 바뀌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있다. 생각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경험과 사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국민통합위원회도 정치·세대·지역 등의 갈등을 풀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현장형 국민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생각을 바꾸거나 갈등을 없애기보다 서로의 말을 들을 기회를 만드는 시도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우리 사회가 걱정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많이 싸운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싸우는 동안에는 적어도 상대에게 건네는 말이 남아 있다. 설명하고 항의하는 것도 상대가 듣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작 관계가 끊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은 “그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해요”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질 때다. 그때는 합의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말을 걸어볼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