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중요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지면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고 누군가는 깊은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법적 판단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념과 삶의 방향이 걸린 문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긴장하고 극단적인 감정 속에서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뉴스 속보를 확인하며 불안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혹은 가까운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불안과 분노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판결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한쪽에서는 “이제야 정의가 바로 섰다”고 말할 것이고, 다른 쪽에서는 “이제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고 한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판결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이후,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바라보고 살아가야 할까? 판결이 끝난다고 해서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 균열 위에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승패의 논리가 아니라 더 깊이 사고하고 조율하는 힘이다. 세상을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만 나누는 것은 너무나 직관적이다. 이분법적 사고(black-and-white thinking)라고 부르는 이 사고방식은 명확하기에 편리하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점점 더 흑백 논리에 갇혀가고 있다. 상대를 적과 아군으로만 구분하고 신중한 태도는 우유부단함으로, 중립적인 태도는 비겁함으로 해석되곤 한다. 이번 판결을 기다리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특정한 결과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반대편의 입장은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법이 내리는 결론이 사회적 합의의 끝이 될 수는 없다. 판결 이후에도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고, 대화하고, 가족으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 관계를 회복할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갈등 속으로 들어갈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판결이 내려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적 결정 이후에 더 어려운 대화와 조율이 시작된다. SNS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대신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계속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한마디가 정말 중요하다. “당신은 틀렸다”가 아니라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태도, “넌 나의 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 이것이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과정조차 거부한다면 판결 이후의 세상은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즉각적 보상(instant gratification)을 원하는 우리의 심리는 답을 빨리 알고 싶어 하고 갈등이 단숨에 해결되기를 바라며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중요한 판결일수록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과정이 더디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이번 판결이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는 있다. 그 변화가 지속되려면 판결 이후에도 신뢰를 쌓으며 논의를 이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심리 상담에서도 문제 해결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문제를 대하는 태도다. 상담실에서 내담자들이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는 “이 문제가 언제 해결될까요?”이다. 그러나 상담자들은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당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라고 되묻는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는 40년의 광야 생활이 필요했다. 예수님의 공생애도 긴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딜 때,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만드신다. 판결이 내려진 후, 우리는 더 깊은 갈등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더 나은 사회적 논의를 위한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그 선택은 누구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몫이다. 빠른 해결을 기대하기보다 대화와 신뢰 형성의 과정을 견뎌야 한다. 법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기다림의 의미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다. 그것은 성숙과 성찰을 위한 시간이다. 판결 이후에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내일을 선택해야 한다. 김화순 소장∥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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