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끝났는데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투표용지 부족 문제로 시작된 논란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위가 계속되고, 선관위를 둘러싼 의혹과 해명이 오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누가 이겼는지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보다 과정을 믿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늘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서 살아가지는 못한다. 입시와 취업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다. 기대와 다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고,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상담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실패 자체보다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를 더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결과가 아쉬웠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다른 이야기들이 이어져 나온다. 왜 그렇게 결정되었는지 자신은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 이미 흐름은 정해져 있었고 자신은 마지막에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자신이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느꼈다는 이야기 등이다.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보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치게 마련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보다 기준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흔들리는 존재가 사람이다. 결과는 시간이 지나며 정리되지만 신뢰가 흔들리면 그다음부터는 모든 과정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설명은 충분했는지, 기준은 일관되었는지,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는지 등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질문이 많아지고 모든 것을 재차 확인하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민하거나 불신이 깊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노만이 아니라 다음에도 내가 고려되는 사람인지, 다음에도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이 함께 들어 있다.
청년 세대는 이런 상황을 더 자주 마주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절차와 기준이라는 것은 앞으로도 내가 기회를 가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절차에 대한 불신은 존재의 불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어 놓는다. 설명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고, 참여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는 선택을 하게 된다. 공동체를 향한 냉소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기대를 걸었던 경험과 실망했던 기억이 쌓이면서 관계를 대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건강한 공동체는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다. 결정에 동의하지 않아도 질문할 수 있고, 설명을 요구할 수 있고, 문제가 드러났을 때 수정할 수 있다고 믿는 곳이다. 사람들이 몸담았던 공동체를 떠나는 이유도 비슷하다.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질문해도 달라질 것이 없고, 설명을 요청하는 일이 불편해지고, 다른 의견을 내는 일이 관계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순간 한 발씩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신뢰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내가 공동체 밖의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 그 인식이 남아 있을 때 다시 참여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하는 것도 여기에 가까울 수 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가 흔들렸을 때 다시 질문할 수 있고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다시 참여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