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칭찬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능력이 필요하다. 뜻밖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칭찬을 하는 것보다 받는 일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누군가 “정말 잘하셨어요”라고 말하면 금세 손사래부터 친다.
“아니에요. 제가 뭘요.”
“운이 좋았어요.”
“다른 분들이 다 해주셨죠.”
칭찬이 길어지면 화제를 돌리거나 농담으로 넘기기도 한다. 겉으로는 겸손해 보인다. 실제로 겸손해서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른 마음이 들어 있다. 칭찬받는 순간이 어색한 것이다.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외부에서 들어오는 평가가 크게 다를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나를 그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데 누군가 나를 좋게 평가하면, 기쁜 마음보다 어색함이 먼저 찾아오는 식이다.
특히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에게서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잘한 일보다 부족했던 것이 먼저 보이고, 열 가지를 해냈어도 놓친 한 가지에 마음을 쏟는다. 다른 사람이 결과를 칭찬할 때 자신은 그 과정에서 실수했던 장면을 떠올린다.
“저를 잘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이 말 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칭찬하는 사람이 나를 잘못 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되면 지금의 좋은 평가도 달라질 것 같은 불안이 따라오기도 한다. 그래서 칭찬을 밀어낸다. 처음부터 자신을 낮춰놓으면 나중에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의 실망도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수치심이 깊은 사람에게는 칭찬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수치심은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에서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번져가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말을 들어도 마음에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누군가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줘도 마음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먼저 나온다.
‘내 진짜 모습을 몰라서 그래.’
사람의 마음은 참 묘해서 자신을 비판하는 말은 쉽게 믿으면서 자신을 좋게 말해주는 사람에게는 증거를 요구할 때가 있다. 나쁜 평가는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좋은 평가는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어린 시절 칭찬이 늘 조건과 함께 주어졌던 사람도 있다. 성적이 좋을 때, 말을 잘 들을 때,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인정받았다면 칭찬은 기쁨과 함께 부담을 가져올 수 있다.
‘계속 잘해야 한다.’
‘다음에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러면 칭찬은 선물이 되기보다 다음 성과를 요구하는 청구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교회 안에서는 여기에 ‘겸손’이라는 가치가 하나 더 얹어진다. 칭찬을 받으면 “제가 한 게 뭐가 있나요. 다 하나님이 하셨죠”라고 답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배워왔다. 물론 신앙에서 겸손은 고귀한 태도다. 내가 가진 것과 이루어낸 것을 전적으로 자기 능력의 결과라고 여기지 않는 마음에는 분명 아름다움이 있다.
그런데 자신을 낮추는 것과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로 보인다. 누군가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한다고 해서 교만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교를 통해 힘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애쓰셨어요.”
“알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데 우리는 왜 그 짧은 말을 어려워할까. 우리는 겸손을 자신을 작게 만드는 태도로 배워온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나의 장점을 인정하면 교만해질 것 같고, 내가 잘한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조차 왠지 신앙적인 겸손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도 신앙의 한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는 고백을 들여다보면 자신을 지워버리는 고백처럼만 들리지는 않는다. ‘나의 나 된 것’을 인정하면서 그 삶의 근원을 은혜 안에서 바라보는 고백으로도 읽힌다.
칭찬을 받는 연습은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 좋은 말을 건넸을 때 곧바로 부정하거나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잠깐 그대로 받아보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면 된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다. 마음속에서는 ‘그 정도는 아닌데’라는 말이 올라올 수도 있다. 그래도 상대가 건넨 좋은 마음을 굳이 돌려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칭찬은 때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나를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만나게 해준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사람들이 경험하는 내가 언제나 같지는 않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친절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을 수 있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수고가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다음에 누군가 좋은 말을 건넨다면 급하게 손사래부터 치지 않아도 좋겠다. 누군가 나에게서 발견한 좋은 것을 나까지 굳이 부정하지 않는 것, 그 정도의 겸손도 꽤 괜찮아 보인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